부처님의 일대기를 다룬 문집 ‘팔상록(八相錄)’의 이면에 조선후기 군수물자의 내역이 담긴 관문서가 발견되어 학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동국대 불교학술원은 11일 11시 동국대학교 본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강화부 부상각진보상각돈대상 각양군기잡물수목(江華府 府上各鎭堡上各墩臺上 各樣軍器雜物數目, 이하 강화군기수목)이라는 긴 제목의 관문서가 담긴 ’팔상록‘을 공개했다.
‘강화군기수목’은 1854년 2월 13일 현재 강화부 각 진보와 돈대, 봉수대, 4영 등에 배치된 무기와 군사물자 현황까지 자세히 정리된 것으로 강화유수(江華留守)의 책임 하에 정리한 관문서로, 19세기 중반 병인양요 직전 강화부의 방어 태세 전반을 살필 수 있는 군사사적으로 매우 귀중한 자료다.
1854년 필사된 팔상록(권4 1책본)의 이면에 모습을 드러낸 ‘강화군기수목’은 같은 해 2월에 기술된 것이다. 강화도의 최성엽이라는 사람이 우봉 최씨 일가의 극락왕생과 안녕수복을 기원하며 ‘강화군기수목’을 이면지로 활용해 그 해 여름에 필사했기 때문이다.
이번 발굴은 동국대 불교학술원이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ABC)사업의 일환으로 올해 상반기 강원도 평창 지암정사가 소장하던 도서 170책에 대한 목록 조사와 촬영 작업 중 발견됐으며, ‘군사기밀문서를 품은 불서(佛書)’라는 의미와 ‘한 책을 통째로 이면지에 필사한’ 극히 드문 경우로 매우 희귀한 자료로 평가된다.
불교학술원 HK 이종수 교수는 “조선후기 본격적인 해안 방어론의 등장 직전의 강화를 중심으로 한 조선의 군사적 수준과 외세에 대한 방어능력을 살펴보는데 있어, 1783년 ‘강화부지’ 이후 유사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매우 긴요한 자료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또한 발굴된 ‘팔상록’은 부처님의 일생을 한글로 기록한 책으로 조선후기 불서의 한글 대중화라는 평가와 함께 더한 의미가 있다.
불교학술원 HK 김용태 교수는 “팔상록에는 규장각 문헌을 인수, 보관했던 경성제국대학의 도서 인장이 찍혀 있고 왕궁의 서체인 궁서체로 필사되어 있다”며 “이는 외규장각이 있던 강화도의 군기수목을 이면지로 활용해 만든 상황을 고려할 때, 팔상록의 유통과 왕실·관인 층과의 불교신앙 상관관계가 있는지 추적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강화군기수목’이라는 군사기밀문서의 이면에 왜 ‘팔상록’이라는 불서를 필사했는지에 대해서는 "구한말 격동기의 국가기밀의 안전을 위한 불서 위장, 왕실 불교신앙과의 연관성, 단순한 이면지 활용 등 여러 해석이 가능하나 아직 확실한 근거는 없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발굴의 성과를 올린 동국대 불교학술원의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ABC)사업은 방대한 불교와 유교 등의 기록문화를 조사·정리·연구하는 작업으로, 한국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넘어서는 다방면의 고문서와 문헌자료를 새롭게 발굴·소개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고 있다.
계율청정 불교조계종 총무원장 혜인스님은 "불교문화 미술 중에 고고학적으로 가치가 높고 학술적으로 연구할 만한 것들이 매우 많다. 이런것을 국가에서 더욱 더 확고히 체계적으로 갖추어 관리하는 시스템이 시급히 도입되어야 한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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