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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조선 사회는 불교사회였다
글쓴이 : 총무원 날짜 : 2013-04-24 (수) 13:58 조회 : 1186

조선 건국 이후 중기까지 불교가 조선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학계 주장이 대두됐다.
한국사상사학회(학회장 김영미ㆍ이화여대 교수)가 4월 13일 이화여자대학교 인문관에서 개최한 제161차 월례학술발표회에서는 조선초기 불교정책에 대한 고찰이 이어졌다.
 
이 날 ‘15세기 불교정책의 재검토’를 발표한 양혜원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조선전기 불교정책은 유교와 불교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양 교수는 “억불정책은 성리학적 이단 배척 일환이 아닌 당시 왕실의 숭불에 대한 조정 신료들의 반발이었다”며 “조선후기까지 왕실이나 민간의 숭불은 계속 이어졌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조선 초기 유학자들의 억불숭유는 당시 사회에서 앞도적으로 우위에 있는 불교계를 정리하기 위한 명분이었다”며 “조선사회에서 불교의 영향력이 약화된 것은 16세기 중앙에서 불교측 인사들의 위상이 약화되며 불교적 요소가 배제되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고 말했다.
 
손성필 한국고전번역원 박사는 ‘중종대 불교정책의 전개와 불교사적 의의’ 발표를 통해 “15세기 까지만 하더라도 국가 관료체제의 일부로 선교양종 승정체제가 유지됐다. 또 한시적 부역에 대한 대가로 승려 자격증인 도첩을 발급하는 등 불교정책을 현실적으로 운용했다”고 말했다.
 
손 박사는 이어 “실록을 보면 중종 대에 이르러 왕실과 신료, 신료와 신료 간의 불교정책의 시행에 대한 입장 차로 갈등양상이 보인다”며 “중종 초반 연산군 말기 붕괴된 선교양종 승정체제 복구가 지연되는 상황에서 1516년 기신제도 폐지되며 비로소 성리학적 왕정의 기틀이 다져진다”고 말했다.
 
특히 손 박사는 “하지만 중종대가 불교세가 가장 침체한 시기로 보는 시작은 재고돼야 한다”며 “이 때1,638개 이상의 사찰이 유지됐으며 민간에서는 승려 수가 증가하고 사찰판 불서 간행이 급증하는 등 불교세가 꾸준히 증가했다. 이후 명종대 선교양종 승정체제 복구는 이러한 배경 하에 추진된 것으로 승려 증가에 대한 대책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춘순 경희대 교수는 “중종 이후 문정왕후는 수륙재 등을 통해 불교 대중화에 기여했다”며 수렴청정을 하며 기본적으로 억불이던 정책을 바꾸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지속적으로 추진된 숭불정책으로 불교가 저변으로까지 확대되었고 승과를 통해 걸출한 인물 휴정ㆍ유정 등이 배출됐다”며 “임진왜란에서의 이들의 활동은 다시 불교가 대중 저변에 확대되는데 기여하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