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매란 인도의 산스크리스트어로 삼마지(三摩地)라고도 합니다.
마음을 어느 한곳에 집중하는 지와 그렇게 심도 있게 세밀히 관찰하는 관으로 구성이 되는 것입니다.
흔히 각종 관법들이 삼매수행의 방법들이지요.
예를 들자면 세상을 텅 비어서 인도 연도 작용하지 않는 공한 그 자리를 집중하고 관찰하는 공삼매가 있고, 세상은 덧없고 대상들이 모두가 정해지지 않는, 절대대상이 없는 걸 집중하고 관하는 무상삼매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각종 삼매의 종류는 가히 없습니다.
그 중 수능엄 삼매는 무엇인가?
대품 반야경 대승품에 108삼매가 설명되어 있는데, 수행자가 처음 용맹스러운 마음으로 일체의 번뇌와 욕망을 깨뜨리며 집중하고 들어가는 단계를 수능엄삼매라고 합니다.
만약에 수능엄삼매를 닦고자 한다면 마음에 크게 용기를 간직하고 그 어떤 두려움할 대상이 나 절대적인 집착의 대상들이 원래 없다고 다짐을 하면서, 자신이 끌리는 대상을 마음속으로 처부시고 정면으로 면밀하게 집중하고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랗게 계속하면 습관과 욕망, 번뇌와 집착을 이기는 힘이 생기게 됩니다.
자 그렇다면 이런 삼매와 깨달음은 어떤 관계일까. 설명을 하겠습니다.
미륵하생경에 보면 가섭존자가 계족산에서 선정에 들어 있다가 무수한 세월이 지난 후에 미륵불께서 이 세상에 나올 때에 석가모니불의 가사를 전달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스님이 밥상을 받아놓고 삼매에 들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며칠이 지났다는 이야기 등이 일종의 삼매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삼매는 일종의 정신집중이며 관찰이지, 그 자체가 우리 부처님이나 선지식들이 말씀하신 그런 깨달음이 아닌 것입니다.
들고 남이 있고 고요하고 머무름이 있는 그런 경지는 어디까지나 중생계이며, 꿈이며 정신의 각종 단계일 뿐입니다.
따라서 수 만 년을 선정에 들어 있다 해도 그걸 가지고 깨달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깨달음은 단계가 없으며 계급이 없고 닦고 안 닦고 그런 차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얻고 구하고 잃고 그런 차원도 아니며 머물고 걸리고 가고 오는 그런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가깝고 쉬운 길이라고도 합니다.
흔히 삼매를 닦아서 깨달음을 구하려고 한다면 끝도 가도 없고 계속 될 뿐 종착역은 없게 됩니다.
그때는 마땅히 삼매의 욕심마저도 놓아야 그런대로 보이겠지요.
수행자들이 삼매를 중시 여기고 또 그 걸 얻음으로 알고 매진을 한다면 가히 정신 차릴 기약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필요한 수행이기도 하며 스승의 지도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특히 자신의 잘못된 인식이나 습관을 바로 잡고 마음의 세계를 탐구하는데 대단히 유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