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비니
붓다가 태어난 곳이다. 인도와 네팔의 국경 마을 중 하나인 소나울리에서 27㎞정도 떨어진 이곳은 현재는 네팔 쪽에 위치하고 있다. 붓다의 대열반 후 300년이 지나서 전륜성왕(轉輪聖王)이라 불리는 아쇼카대왕은 룸비니를 방문해서 거기에 돌기둥을 세웠다. 그 기둥은 비문을 가지고 있는데 그 내용은 이곳이 붓다가 태어난 곳임을 알려주고 있다. 오랜 동안 세인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있던 이곳은 19세기에 시작된 영국인들의 발굴로 인해 다시 한번 주목을 받게 된다. 붓다가 태어난 곳은 룸비니 남쪽에 있는 숲 속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드가야
붓다가 득도한 곳으로 유명하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한 왕국의 왕자로 태어난 그는 왕위를 포기하고 오랜 세월을 스승들을 찾아 돌아다닌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곳에 도착해 보리수(Bo tree) 밑에 앉아 득도를 할 때까지 일어나지 않겠노라고 다짐한 후 결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들어간다. 마귀의 여러 유혹을 물리친 후 마침내 그는 보살의 단계를 넘어 깨달은 자란 의미의 붓다가 되었다. 붓다가 득도를 한 장소로서 보드가야는 불교도들의 영적인 고향이 되었다.
사르나트
일명 녹야원(鹿野園)이라 불리는 이곳은 붓다가 득도후 처음으로 설법을 한 곳이다. 이곳은 힌두교 최대의 성지라 할 수 있는 바라나시에서 10㎞ 정도 떨어져 있다. 붓다는 보드가야에서 득도후 걸어서 라지기르에서 그를 버렸던 다섯 제자를 찾아 250㎞ 떨어진 이곳에 오게 된다. 그러다가 바라나시 외곽에 있는 녹야원에서 그들을 만나서 그들을 상대로 8정도(正道)와 중도(中道) 및 여러 깨달음을 설법한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초전법륜(初轉法輪, Dharmachakrapravatana)이라 부르고 있다. 이곳은 아쇼카 대왕과 사캬(Saka)와 쿠샨(Kushan)왕조의 후원 아래에 그 명성이 최고도에 달했다. 그러나 12세기 이슬람의 침입을 받고 나서는 다시 그 명성을 회복하지 못하다가 1834년에 영국의 고고학자인 알렉산더 커닝햄(Alexander Cunningham)에 의해 발굴이 되어 인도의 역사에 다시 등장을 하게된다.
쿠쉬나가르
이곳은 붓다가 대열반에 든 곳이다. 보름달이 뜬 밤에 벨루와(Beluva)란 곳에서 “모든 존재의 무상(無常)”에 대해 설법을 하시던 붓다는 곧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다. 얼마 후 그곳에서 그는 빠와(Pava)란 곳으로 간다. 왜냐하면 천한 한 대장장이가 그에게 공양을 제공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한 음식을 제공하여 슬픔과 근심에 차 있는 대장장이에게 “나의 마지막 식사를 제공한 자는 큰복을 받을 것이다”라는 말로 위로한다. 숨을 거두기 전 그가 한 마지막 말은 “모든 것은 생멸(生滅)한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