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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종교 (불교에서 바라본 이슬람과 기독교)- 최종석 교수
글쓴이 : 총무원 날짜 : 2015-04-07 (화) 14:10 조회 : 1032

▶이슬람은 어떤 종교인가?

1. 이슬람의 의미

Islam은 salam에서 파생된 말로서 그 뜻은 平和라는 뜻인데 轉化되어서 복종, 공순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이슬람’은 神에 대한 복종에 의해 마음의 평화를 얻는 의미를 띄게 되었다. 이슬람 교도들의 신앙고백은 ‘알라 외에는 신이 없으며, 무함마드는 알라가 파견한 使者’로 요약된다.

이슬람교가 창시되기 前의 아랍人은 목축 민족이었다. 그들은 주로 지방신, 별, 돌, 알라라는남신을 숭배 하고 있었다. 이슬람의 최고신인 Allah는 al이라는 관사와 Illah 神의 합성어이다. 즉 ‘그 神’ 즉 유일神을 의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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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모하메드의 일생

모하메드[높이 존경받는 의 뜻] 570년 메카에서 쿠라이쉬 부족, 하심 家에서 유복자로 탄생.출생. 부친은 그가 태어나기 며칠 전에 죽었고 모친은 그가 6세때 죽었다.

할아버지가 돌보아 주었고, 그 할아버지도 9세 때 死亡, 그 후 백부집에서 양육되었으며, 백부의 가세가 기울고 힘겨운 노동을 해야 했다. 나중에도 모하메드는 자신의 처지를 알고, 특히 가난한 사람과 어린이를 동정(고아로서 인생의 비애를 깊이 맛보았기 때문이다).

성장하면서 隊商의 일을 거들게 되었다. 25세 때 그는 부유한 미망인 하디자(Khadija)와 25년 간 결혼했다. 그는 모하메드보다 15살 연상으로 두 번 결혼했다.

15년 간 메카의 시외에 있는 히란山 동굴에서 명상했다. 40세(610년)가 되던 해에 모하메드는 예언자로서 사명감에 눈을 떴다. 메카 근처의 동굴에서 “알라 이외에 다른 신은 없다.”라는 알라의 계시를 받았다.

거기에서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천사 가브리엘이었다. → 알라의 使者. 예언자가 될 것을 호소하였다. 모하메드가 神의 啓示로 민중에게 전한 것은 “알라만이 유일신이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상숭배는 지옥에서 영원히 불에 탈 것을 민중에게 경고했다.

622년 9月 메카를 탈출하여 메디나로 갔다. 이 도주를 [Hijirah] 혹은 [Hejirah](聖遷)라고 부른다. 메디나에서 그는 예언자라기 보다는 입법자, 행정관, 정치가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슬람 공화국 건설에 힘을 쏟다가 632년에 死亡. 이 당시에 전 아랍 영토가 실질적으로 그의 지배 下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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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알라신과 구원

이슬람의 신앙고백은 “알라 외에는 神이 없고, 모하메드는 神이 보낸 使者다.”

알라는 고유명사가 아니고 아라비아에서 神을 일컫는 호칭이다. 히브리어의 ‘Elohim’에 가깝다. 알라는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존재, 거주하는 집이 없다. 모습도 색깔도 없다. 나뉘어지지도 않는다. 그 자신 모든 것을 듣고, 보고 있다.

7개의 특성 ①생명 ②지식 ③전능 ④의사 ⑤청각 ⑥시각 ⑦말 을 갖추고 있다.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이슬람교에서도 神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존재이다.

神이 내린 네 단계 계시

① 아브라함을 통해서 유일신, 단일신敎的 계시

② 모세를 통해서 십계명

③ 예수를 통해서 황금법칙 →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④ 이 이웃사랑을 어떻게 하며, 이웃사랑에 必要한 것이 무엇인가

ⓐ 이슬람 信條 “알라만이 존재하는 유일신이며 모하메드는 그의 예언자”

ⓑ 기도하는데 충실하다. / 아침 일어나서, 점심 때, 오후에, 해가 진 후에, 자기 직전 (찬양과 감사 / 탄원) 전. 금요일이 聖日. / 융단을 깔고 몸을 씻고 융단을 깔고 손을 얼굴 양면에 벌리고 엄지손가락을 귀밥에 대고 똑바로 서서 “알라후 아크발(알라는 가장 위대하시다)” 외운다. 그리고 엉덩이부터 구부려서 손을 무릎에 놓고 절하면서“나는 위대하신 나의 알라의 온전하심을 찬양합니다.”기도를 방향이 예루살렘이 아니고 알라의 신전인 메카의 카바를 향하게 되었다. 카바의 벽에 박혀있는 거룩한 운석, ‘검은 돌’에 순례객들이 입맞춤-신성시.

ⓒ 자선 사랑(Charity) 당시로서는 획기적이고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적극적이고 확실한 福祉의 문제를 제시, 해결 ⇒ 복지 2.5% 세율. 1/40 매해마다 가난한 사람에게 준다.

ⓓ 라마단을 지키는 일; 아랍달력은 1개월, 9월. 메디나로 도피한 기간. 성스런 달. 금식. 해가 뜨면 하루 종일 물도 입에 대지 않고 해가 진 후에야 적당히 조금 먹는다. 음력이기에 매해 다른 달이 된다. 여름이 되면 어렵다.

ⓔ 순례; 일생에 한 번은 메카에 가야한다. 메카에서는 지위를 나타내는 옷을 벗고 모두 간단한 홋이불 같은 것으로 갈아입는다. 神 앞에 平等하다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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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슬람의 기독교 비판

기독교는 신은 볼 수 없는 존재이면 동시에 볼 수 있는 존재라는 비판을 받는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신으로서의 제한성, 한계성으로 예수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엄격한 一元論이기에 三位一體說을 부정하며, 예수를 알라의 使者에 불과하다고 선언한다.

모하매드는 예수를 경멸했던 것은 아니다. 예수는 신이 보낸 참된 예언자이다. 예수가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肉體와 三位一體說을 인정하지 않는다. 신이 인간의 대상이 되고 또한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사이에서 타협하려는 인간의 경향으로 보았다.

신은 유일하다. 신이 아들을 낳았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sura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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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슬람의 종파

순니파 : 정통파로 알려졌다. 모하메드의 관습을 중시하고 모하메드의 言行을 충실 히 따름. 코란과 하디스(이슬람 종교적 전승으로 구두로 전승된 공동체적 관습)를 중요시하는 종파로서 이슬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음.

시아파 : ‘알라의 당파’, 알리(사촌, 사위)만이, 그리고 그 자손만이 할리파 계승권을 갖는다고 주장함. 알 리가 본래 할리파 계승자인데 앞의 3인이 그 지위를 가로챘다고 3인의 할리파를 저주함. 대부분의 이란의 이슬람교도는 이 시아파에 속한다.

모하메드의 미망인 ‘아이샤’는 ‘아브 바카즈’의 딸로서 알리가 할리파가 되는 것을 격렬하게 반대했다. 알리 死後에 알리의 아들 ‘하산’이 계승하기로 하였으나, 먼저 ‘무아위야’가 계승하고 그 死後에 할리파가 되기로 양보했다. 그러나 정작 ‘무아위야’가 죽은 후, ‘하산’이 계승하지 못하고 ‘무아위야’의 아들이 그 지위를 물려받았다.

이를 기점으로 하여 이슬람교 내부에 커다란 분열이 일어나고 시아파는 ‘무마이야朝’를 정당한 정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 할리파 제도는 1924년까지 존속하였으나, 터키 초대 대통령 ‘케말 파샤’가 이 제도를 폐지하였다. 이슬람 세계의 지도권은 아랍에서 페르시아를 거쳐 터키로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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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슬람 신비주의인 수피즘

'수피'라는 말은 원래 아랍어 수프[suf](양털로 만든 거친 옷)에서 유래한다. 즉 세상의 쾌락을 버린다는 상징으로 신비주의자라가 보다는 금욕주의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러한 옷을 입는 이슬람 금욕주의자를 지칭하게 되었다. 이러한 신비주의 운동은 이슬람제국의 수도가 바그다드로 옮겨진 후 대두되었다.

모하메드의 메시지는 지옥에 대한 위협, 공포 등에 호소하였다. 많은 지역에서 지옥에 대한, 사후의 심판이 아니라 신과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 수피주의 : 영지주의와 짜라투스트라교 대승블교, 베단타철학이 사상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① 초기 : 창조자 신과 피조물 인간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 인간이 신이 되는 것은 불가능. 코란에서 알라와 인간을 동일시하는 것은 금기였다.

② 페르시아(꽃피움) :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의 합일이란 사상을 圓融하여 창조자와 피조물이라는 이원의 세계를 초월해 버렸다.

알 할라쥬[Al- Hallaj] (858~922): ‘알 할라쥬’는 페르시아인으로서 인도에서 요가를 배웠다고 함. “나는 神이다”라고 선언하고, 신모독죄로 922년 십자가에 못 박혀 효수 당했다.(그 자신이 이미 신이 되었다고,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했기에 '자아'가 이미 소멸되었다고 생각하였다. 자아가 소멸한 상태, 즉 그에게 있어서 神과의 神秘的 合一은 사랑하는 사람의 그것과 매우 흡사함.)

알 가잘리[Al-ghzzali] (1058~1111): 아우구스티누스, 루터와 비견되는 사상가.

이슬람 신비주의에 ‘사랑’의 사상이 發生, 죽음이 공포의 대상에서 사랑이 있는 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수피에서는 神과의 만남이 來世에서 가능한 것으로 여긴다.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도록 인도하는 다리다.

알-가잘리는 지옥불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옥불은 물은 태울 수 있어도 영혼은 태울 수 없다고 여겼다. 수피에게 삶은 그림과 꿈에 불과하다. 죽음으로써 눈을 뜬다는 것이다. 죽음을 통해서 사람을 사랑하는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 사랑을 통하여 신과 하나가 되는 것이 수피의 이상이다. 인간 의 성질은 신성 속에서 소멸한다. 인간 자아는 소멸하고 인간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은 神自身이다. 따라서 “나는 신이다.”라고 선언하였다.

수피주의는 이슬람의 개혁이다. 초기에는 엘리트 집단이었으나, 얼마 못가서 전 이슬람 세계에 퍼졌다. 수피는 고전적 이슬람 순니의 세계관과 기본적으로 다르다. “사회보다는 개인적, 역사적, 영원한 것, 신의 힘, 사랑, 등을 강조한다. ” 그러나 진실한 이슬람교도의 중체적 확신은 신의 명령을 준수하고 신의 나라 건설에 있다. “인간의 응답보다 오히려 신의 주도권을 강조하는 것”이 이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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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슬람세력의 서구(반미)감정의 배경

아랍민족과 유대민족은 셈계 민족으로, 셈어계통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민족들이다. 두 민족은 아브라함을 공통조상으로 받들고 있다.

유대민족이 A.D. 135년경 로마군에 의해 멸망당한 후, 대부분의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지역에서 추방되었지만, 팔레스타인지역에 남아있던 유대민족과 아랍민족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2,000년 동안 함께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살아왔다. 이런 역사적 친밀한 관계를 가진 두 민족이 왜 공존과 화합을 할 수 없으며, 종교간에 상호 배타적이었는가 하는 것은 세계1차 대전을 전후하여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서구의 아랍지역에 대한 제국주의가 본격화하면서 시작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6년 3월에, 영국은 프랑스와 비밀리에 아랍지역에 대한 사이크스, 피코협정을 체결하고, 오스만 제국령인 아랍지역의 분할을 결정했다. 다른 한편으로, 1915년 1월부터 1916년 3월 사이에 카이로 주재 영국 고등판무관 맥마흔과 당시 메카의 태수였던 하심가의 후세인이 10차에 걸쳐 서로 주고받은 편지에 의해서, 영국은 아랍민족의 오스만 정부에 대한 봉기 대가로 아랍인 거주지역의 독립을 지지하고 있었다. 또한 영국은 1917년 11월 2일에 유대인의 지지를 받기 위해 밸푸어 선언을 하여 유대인 국가 건설을 약속하였다.

현재 팔레스타인이라 불리는 지역에서 당시 이슬람교도, 기독교도, 유대교도가 공존하고 있었다. 오스만 제국령인 아랍지역은 비밀협정에 기초하여 영국, 프랑스만의 입장대로, 영국의 위임통치령인 팔레스타인, 요르단, 이라크와, 프랑스의 위임통치령인 시리아, 레바논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처럼 팔레스타인이라는 한 지역을 두고 아랍민족에게는 아랍국가의 독립을, 유대민족에게는 유대민족국가 창설을,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는 자기네들끼리의 영토분할과 같은 3중의 모순된 비밀조약이 맺어졌다. 중동에 대해 서로 모순된 이들의 3중 정책이 바로 오늘날 중동분쟁의 원인이었다.

그들이 저질러 놓은 비도덕적이고 파렴치한 영토분할 구상으로, 지금 두 민족이 이제 역사적으로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엄청난 희생과 보복의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그리고 당사자인 영국과 프랑스, 미국은 평화의 화신임을 가장하며 인류의 공존과 평화를 들먹이고 있는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모순된 독립약속에 따라 아랍과 유대인은 서로 팔레스타인에 국가를 세우기 위해 투쟁을 시작하였다. 유대인들이 유럽에서 박해받는 거의 2,000년 동안 팔레스타인의 주인은 아랍인이었다. 아랍인이 그 땅의 주인으로 2,000년간 살아왔고, 95%의 아랍인과 5%의 유대인들이 함께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살아 왔다.

1948년 5월 14일에 영국의 위임통치가 종료됨과 동시에, 미국의 후원 하에 유대인은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의 국가 수립을 선언하였다. 그러자 다음날인 15일에 주변에 있는 아랍국가들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 사우디 아라비아)은 쫓겨난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을 대신하여 아랍민족의 대표라는 명분으로 전쟁을 개시해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였다. 제1차 중동전쟁에서의 패배는 약 100만명의 팔레스타인 민족의 현대판 엑서더스를 낳게 하였다.

이집트의 대통령에 선출된 낫세르가 1956년에 아랍 민족주의를 표방하면서 미국과 영국이 아스완 하이댐 건설 원조를 중단한 데 반발하여 수에즈 운하을 국유화 한다. 이에 이스라엘은 영국, 프랑스와 함께 이집트에 침공하여 제2차 중동전쟁을 일으켰다. 이 또한 아랍 측의 무참한 패배로 이어졌다. 1967년 수에즈운하 분쟁을 계기로 이집트와 이스라엘간에 전쟁이 발발하였고, 전쟁은 시리아, 요르단으로 확대되었다. 이것이 6일 전쟁이라 불리는 3차 중동전쟁이다.

오늘날 중동 영토 분쟁의 불씨가 되는 시나이 반도, 가자지구, 요단 강 서안, 시리아의 골란고원을 이스라엘이 점령하였다. 이에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수 차례에 걸쳐 이스라엘의 점령지 즉각 철수를 위한 결의안 242호를 채택하였으나, 그 결의안은 3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1974년 중동전쟁 때는 석유가 무기화 되면서 제1차 석유위기를 촉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친 미국 친 이스라엘 국가로 분류되어 원유수급에 막대한 차질을 빚기도 했다.

상황이 그러한데도 미국이나 서방 세계는 리비아, 이란, 이라크가 반미를 부르짖으면 곧잘 무역봉쇄를 취한다. 지금 이라크에는 비행 금지구역이 설정되어 있다. 유엔결의안이 아니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남의 영공에 설정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50여 년 동안 수 차례에 걸친 유엔 결의안을 준수하지 않아도 아무 제재를 하지 않으면서, 아랍 민족의 조그만 실수에 대해서는 폭격, 무역봉쇄, 경제제재 등의 조치를 취한다. 그러다 보니 아랍 쪽에서 미국이나 서방측에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극단적 반발이 테러나 폭력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테러나 이슬람 원리주의가 이슬람 세계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슬람 세계에는 ‘Islamic Fundamentalism’, 즉 우리말 번역인 ‘이슬람 원리주의’ 또는 ‘이슬람 근본주의’라는 용어가 없다. 원리주의 용어는 1920년대 미국에서 과격한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의 극단적인 세속화 반대운동에 처음 붙여졌다. 이슬람 원리주의는 1940년대 서구식 정치 질서와 세속주의에 반대하는 일체의 이슬람 운동에 서방세계가 갖다 붙인 용어이다.

이슬람원리주의는 이슬람세계에서는 아랍어로 우술리야(usuliyyah)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명칭보다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운동을 이슬람부흥(nahdah: 부흥, 재생)운동으로 불리는 것을 더 선호한다. 이슬람원리주의 운동은 전통이슬람이 부패하고 무능하여 이슬람사회가 쇠퇴하자 재생, 부흥해야 하겠다는 개혁차원에서 18세기 중엽에 무슬림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서구제국주의의 외압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이슬람국가 대부분 서구열강의 식민지 또는 그 영향권에 들어가 사회적 파탄을 가져오게 되자 이 운동이 더욱 강화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한편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이 여러 이슬람국가에서 조직을 만들어 다양한 방법으로 정권장악 또는 유지를 위하여 투쟁할 때 그들이 내세우는 구호가 지하드(jihad: 성전)이다.

이슬람세계의 이슬람원리주의 주요 조직은 다음과 같다.

하마스(1987년 결성, 이슬라엘을 대신하는 팔레스타인 이슬람국가 건설이 목표),

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1970년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활동하던 무장요원들이 만든 조직, 이스라엘과 지하드(Holy War)를 통해 팔레스타인에 이슬람국가를 수립하는 것이 목표),

알 지하드(이집트의 이슬람원리주의 조직, 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이다와 밀접한 관계, 이집트 정부를 전복하고 이슬람원리주의에 바탕으로 한 이슬람국가 건설이 목표),

헤즈볼라(레바논에서 활동중인 급진적 쉬아파 조직, 이스라엘과 중동평화 협상 반대, 반이스라엘, 반서방 강경노선을 지향),

하라카트 울 무자히딘(파키스탄에 근거지를 두고 카시미르 지역에서 활동하는 무장 조직, 미국과 서구 국가를 테러 공격한다는 빈 라덴을 지지하는 입장),

알 카이다(1980년대에 오사마 빈 라덴이 조직, 출발은 구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저항하고, 과격이슬람 무장요원들에 대한 재정지원과 훈련, 현재목표는 전 세계 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을 규합, 이슬람세계로부터 외부 세력을 몰아내고 세속적인 이슬람국가 정부를 붕괴시키는 것이 목표) 등, 이외에도 많은 이슬람원리주의 조직들이 존재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보기에 무력을 행사하는 극단적인 원리주의는 이슬람 세계에서 5% 미만이다. 절대다수의 이슬람 세계는 서방과의 공존과 협력을 통해서 함께 살아야 한다고 하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나 서방 세계 측은 이슬람 세계를 테러나 일삼고 원리주의나 시대착오적인 무모한 발상으로 지구촌 공동체를 위협하는 세력이라 간주하여 말할 수 없는 제재를 가하고 있다. 서방의 시각으로 위험하고 테러나 일삼는 사람들이라는 정서를 갖고 있다면 아랍은 결코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국제사회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인가. 현재 유엔을 주축으로 한 국제사회의 일반적인 합의는 1967년 이스라엘이 점령한 영토를 아랍측에 반환함과 동시에 그곳의 일부에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두 당사자 모두가 과거의 불행한 대립을 청산하고 현실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 공동운명체적인 틀을 가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상호 실체 인정-외교관계 수립-상호불가침 선언-점령지 반환과 그곳의 비무장-합의된 지역에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과 같은 절차를 밟아가야 할 것이다. 그 일환으로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1980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으로 관계 정상화를 함과 동시에 시나이 반도를 돌려 받았다.

나아가 이러한 과정은 1993년 9월 13일 미국의 백악관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화해와 공존의 중동평화 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협정을 통해 중동문제는 평화적 해결의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가 상호 실체를 인정하고 가자지구와 요단 강 서안 예리코시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립에 합의하였던 것이다.

물론 팔레스타인의 완전 독립은 동 예루살렘의 지위 문제,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 내의 유대인 정착촌 철수문제, 국경선 확정 및 수자원 배분문제,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이스라엘 귀환 등과 같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모처럼 이룩한 평화의 기본 틀은 유지될 것이다.

이러한 평화 분위기는 앞으로 이스라엘과 인근 요르단 및 시리아와의 평화협정 체결로 더욱 공고히 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원하는 대로 빈 라덴이 사라져도 이슬람 과격세력의 투쟁명분의 하나인 대 이스라엘 항전의 구실이 해소되지 않는 한 그 배후세력으로 몰린 미국을 향한 테러행위는 좀처럼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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