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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원장 혜인스님 "정의란 무엇인가"
글쓴이 : 총무원 날짜 : 2015-07-31 (금) 17:50 조회 : 653


정의란 무엇인가

총무원장 혜인스님 “정의란 바로 공명정대한 것”


2007년, 일흔아홉 살의 잭 키보키언 박사는 죽기를 원하는 말기 환자들에게 독극물을 투여한 죄로 미시간 교도소에서 8년간 복역하다 출소했다. ‘죽음의 의사’로 불리게 된 키보키언 박사는 1990년대에 안락사 허용 운동을 벌였고, 환자 130명의 자살을 도우며 자신의 주장을 실천에 옮겼다.


키보키언 박사가 살던 미시간 주에서는 안락사가 불법이다. 오리건 주와 워싱턴 주를 제외한 미국의 모든 주에서도 금지되어 있다. 언뜻 안락사 찬성 주장은 자유지상주의 철학을 그대로 적용한 것처럼 보인다. 자유지상주의자들 생각에는 안락사를 금지한 법이 부당하게 여겨질 것이다. 내 생명이 내 것이라면, 내게는 그것을 포기할 자유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누군가 내 죽음을 돕도록 내가 허락한다면, 국가는 이에 간섭할 권리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 벤담, 밀과 달리 칸트는 정치론에 관해 주요 저술을 남기지 않고, 몇 편의 에세이만 썼을 뿐이다. 하지만 윤리를 다룬 글의 도덕과 자유에 관한 설명에는 정의를 함축하는 힘 있는 주장이 담겨있다.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그는 공리주의를 거부하고 사회 계약을 기초로 한 정의론을 지지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하는 시민은 우리가 생각하는 시민보다 더 숭고하고 엄격한 의미의 존재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치는 여러 면에서 경제와 다르다. 정치의 목적은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개인의 이익 추구를 위해 공정한 규칙을 제공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우리의 본성을 표현하고, 좋은 삶의 본질과 인간의 능력을 펼쳐 보이는 데 있다.


마이클 조던의 막대한 소득이나 빌 게이츠의 엄청난 재산은 어떤가? 그러한 불평등은 차등 원칙에 부합할까? 물론 롤스의 이론은 개개인의 소득이 공정한가를 평가할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 롤스의 이론은 사회의 기본 구조에 관한 것이며 권리와 의무, 소득과 부, 권력과 기회의 배분 방식에 관한 것이다. 롤스가 묻고자 하는 질문은 전반적으로 볼 때 빌 게이츠의 재산이 가장 못사는 사람들에게 이익을 돌리는 사회 체제에서 나왔는가 하는 것이다.


일본은 전쟁에서 저지른 만행을 사과하는 데 인색했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은 소위 ‘위안부 여성’에게 공식 사과와 배상을 하라는 세계 각국의 압력에 직면해 왔다. 1990년대에 희생자들에게 민간 기금이 전달되었고, 일본 지도자들이 일부 사과를 하기는 했다. 하지만 2007년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군은 여성들을 성 노예로 동원한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미국 의회는 일본 정부에 위안부 여성을 노예로 삼은 일본군의 책임을 공식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에서도 공개 사과와 배상에 관한 논쟁이 최근 수십 년 사이 두드러졌다. 1988년에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제2차 세계 대전 때 미국 서해안 포로 수용소에 일본계 미국인을 가두었던 일을 공식 사과하는 법에 서명했다. 1993년에는 의회가 1세기 전 하와이 독립 왕국을 전복한 잘못을 사과했다.


일본은 전쟁 때 저지른 만행을 사과하는 데 미온적이었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은 소위 ‘위안부 여성’에게 공식 사과와 배상을 하라는 세계 각국의 점증하는 압력에 직면해 왔다. 1990년대에 민간 기금이 희생자에게 일부를 지불하였고, 일본 지도자들은 제한적인 사과를 했다. 하지만 이후 2007년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여성들을 성 노예로 동원한 책임이 일본군에게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미국 의회는 위안부 여성을 성 노예로 삼은 일본군의 역할을 인정하고 사과할 것을 일본정부에 촉구하는 결의문을 통과시켰다. 미국에서도 공개 사과와 배상에 관한 논쟁이 최근 수십 년 사이 두드러졌다. 1988년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일본계 미국인들을 미국 서해안 수용소에 억류했던 일을 공식 사과하는 법에 서명했다. 1993년에는 의회가 보다 앞선 과거의 잘못(1세기 전 하와이 독립 왕국의 전복)을 사과했다.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서 좋은 삶을 다 같이 고민해야 한다면, 어떤 정치 담론이 우리를 그 방향으로 이끄는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 내가 봤던 사람 중에, 이 방면에서 가장 유망한 목소리를 낸 인물은 196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선 로버트 케네디였다. 그에게 정의는 그저 국민 총생산의 규모와 분배의 문제에만 관련되어 있지 않았다. 더 높은 도덕적 목적에도 관련이 있었다.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뒤, 2008년 대통령 선거 운동을 하던 버락 오바마도 보다 큰 목적을 지향하는 공적인 삶에 목마른 미국인의 갈증에 호소하며 도덕적·영적 갈망이 담긴 정치를 역설했다. 과연 그가 도덕과 시민 의식을 강조했던 대선 공약을 공동선을 추구하는 새로운 정치로 실현할 수 있을지, 아니면 오늘날 금융 위기와 심각한 경기 침체를 해결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방해받을 수밖에 없을지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