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병으로부터 부처님의 대응 속 교훈
과거에는 전염병을 역병(疫病)이라 했다. 원인을 알 수 없어 막연하게 재액신(災厄神)이나 역신(疫神)의 소행이라고 믿었다. 무명(無明)의 두려움이었다. 불교는 병고로 두려움을 가진 이들에게 무외시(無畏施)를 베풀라 한다. 두려움을 없애주는 보시야말로 가장 큰 보시기 때문이다.
경전 속 부처님께서는 역병의 창궐이라는 두려움에 어떤 무외시를 베푸셨을까? 어떤 자세로, 어떤 행동으로 사람들을 구제하셨을까? 그리고 부처님의 대응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던져주고 있을까.
아함과 니까야 속 역병구제
아함과 니까야, 그리고 니까야 주석서인 니뎃사(Niddesa)는 역병이 창궐했던 바이샬리의 일을 기록해 전한다.
부처님께서 마가다국 왕사성 죽림정사에서 빔비사라왕의 청을 들어 안거에 드셨을 때의 일이다. 밧지국 비사리(毘舍離, 지금의 바이샬리)성에 큰 가뭄이 들어, 기근과 함께 역병이 창궐했다. 사람들은 귀신과 나찰(羅꼡)이 마을에 가득하다고 생각했다. 얼굴과 눈이 누렇게 떴고 어떤 이들은 3~4일 만에 죽어 나갔다. 하루에만 100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 장례를 치르지 못해 버려진 시신들로 성안이 가득 차 마을은 피폐해졌다.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늘어나자 비사리 사람들은 부처님이 계신 왕사성에 마하리(最大) 장로를 보내(기록에 따라 토마라 장로라고도 함)기로 한다. 바라문교에 의지해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도 보고, 자이나교 등 신흥종교에 의지해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부처님께 의지하기로 하고, 빔비사라왕과 친분이 있던 마하리 장로를 마가다국에 파견한다.
마하리 장로가 왕을 찾아 부처님을 보내달라고 청하지만, 왕은 선뜻 응하지 않는다. 갠지스강을 사이에 두고 있던 밧지국과 마가다국은 서로 인종도 정치체제도 다른 경쟁국가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빔비사라왕은 부처님께서 역병이 도는 비사리로 가길 원치 않았다. 왕에게 거절당한 마하리는 부처님을 찾아뵙고 간곡히 비사리를 구제해줄 것을 요청한다. 부처님은 왕의 허락을 받을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결국 빔비사라왕은 마지못해 허락을 하고, 부처님은 비사리로 향한다.
부처님은 발우를 챙기고 500여 비구와 함께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길을 나선다. 빔비사라왕은 부처님을 정성을 다해 갠지스강까지 모신다. 부처님은 강을 건너 사흘을 걸어 비사리성으로 향했다. 밧지국의 영토에 발을 딛는 순간 큰 벼락이 치고, 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바싹 말라 있던 비사리의 땅은 단숨에 가뭄에서 벗어났다.
부처님은 비사리에 도착해 아난다에게 보배경(Ratana Sutta)를 설하시고 이를 사람들에게 독송하도록 권했다. 아난다는 밤새워 경문을 독송하며 부처님의 발우에 성수를 담아 뿌리며 거리를 걸었다. 시신을 치우고 거리를 청정히 했다. 사람들은 보배경을 함께 독송하며 흐트러진 마음을 곧추세우고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났다. 부처님과 500비구의 일곱 날에 걸친 구제활동이 효과를 거두자 역병은 물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