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국왕이 학자들에게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연구하라고 명령을 하였다. 몇 사람의 학자는 30년 후에 수십 필의 낙타 등에 연구논문을 싣고 국왕을 방문하였다. 그러자 이미 나이가 많이 든 국왕은 모두 읽을 힘이 없어져 더 간단하게 정리하라고 했다. 학자들은 다시 몇 년 동안 걸려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해서 국왕에게 보고하였다. 국왕은 눈도 나빠졌고 귀도 나빠졌다. 국왕은 그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못하고 “나는 이제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걸 읽을 시간도 없다. 인생이란 무엇인지 빨리 알고 싶구나, 누구든지 좋으니 한 마디로 인생을 표현하라”고 명했다. 학자들이 잠시 의논을 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대표자가 되어 국왕의 귀에 대고 큰소리로 말했다. “마마, 사람은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그리고 죽어가는 것입니다.” 국왕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그렇구나…”하고 숨을 거두었다. 일반적으로 업이란 단순히 운명에 순응한다던지 팔자소관이라던지 하는 소극적인 것이고 피동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이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견해이다. 숙명론이 인생의 행, 불행을 좌우한다면 우리에겐 희망도 없을 것이다. 불교에서의 업이란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짓는 행위를 뜻한다. 과거의 업보도 현재의 노력 여하에 따라 바뀌게 되어 있는 것이다. 소위 개운(開運)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인생이 짓는바 행위에 따라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전생의 행위는 금생의 나를 만들었지만 나의 행위에 따라 미래는 결정이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였다. 그러므로 인생은 적극적, 능동적인 선업을 쌓아가는데 게으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인생에서 네 가지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1.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2.남자로 태어나기 어렵고 3.불법(佛法)을 만나기 어렵고 4.깨달음을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토록 귀한 일중에서 우리는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성취를 했다. 그러나 궁극의 깨달음에는 우리 모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 목표를 “나는 깨닫기 위해 태어났다”라는 적극적 의미로 이해하고 실천하는데 두어야 하겠다. 인생은 결코 나 혼자만의 고립된 영역이 아니다. 나는 무수한 중생의 노고에 힘입어 나의 생존을 영위해 간다. 상의상관(相依相關)의 연기(緣起)속에서 나의 생이 이루어짐을 자각하고 감사의 마음으로 회향하는 삶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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