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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남양주 봉선사 조실 월운 큰스님
글쓴이 : 총무원  (112.♡.118.135) 날짜 : 2011-07-21 (목) 17:26 조회 : 1045


깨달음은 무엇인가? 그리고 열반은 무엇인가?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를 위해 불자들은 어떻게 나서야 하는가?
 한국선학회(회장 송묵)는 7월 9~10일 남양주 봉선사 (주지 인묵)에서 하계워크샵을 개최했다. 광동 고등학교 학생 80여 명과 지도법사, 교수진 등 100여 명이 참가한 이날 워크샵에서는 봉선사 회주 월운 스님이 ‘깨달음’,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 밀운 스님이 ‘열반’에 대해 각각 법문했다. 이날 법문과 워크샵의 이모저모를 살펴봤다.

깨달음은 행동이다.

 월운 스님은 9일 깨달음에 대해 자리이타를 기반으로 한 정인정과의 행동이라고 법문했다. 다음은 스님의 법문 내용이다.
 깨달음을 위한 삶은 없습니다. 깨닫고 나면 세상은 할 것이 없습니다. 재미가 없는 것이죠.
 우리는 부처님을 이야기 할 때 석가모니 부처님이라고 합니다. 석가모니는 ‘석가족 출신의 성자’라는 뜻으로 석가는 산스크리트어로 샤카입니다. 이를 번역해 보면 능할 능(能)에 어질 인(仁)으로 ‘매우 어진 이’ 라는 의미입니다.
 이 유래는 어디서 나왔느냐. 5000년도 넘습니다.
 오랜 옛날 중부인도의 한 왕국에는 왕자 4형제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고타마 족이었습니다. 고타마는 당시 주식인 감자를 이르는 말입니다. 그들에게는 새로 온 왕비인 계모가 있었는데 그들을 미워했습니다.
 왕자 4형제는 어머니와 매번 부딪힐 수 없어 새벽에 도망을 갑니다. 이들이 도망친 곳이 지금의 카필라 지역입니다. 이들 4형제는 이 땅을 개척하고 왕국을 세웠습니다.
 이들의 아버니 왕은 왕국을 떠난 아들들의 소식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전국을 떠도는 대상들을 통해 아들들의 동향을 물었습니다.
 대상들은 카필라 지역에서 이 왕자들의 소식을 접합니다. 이 왕국의 지도자들은 남쪽에서 올라온 고타마 족이다. 오며가며 들은 소식이 중부인도에서 온 왕손들인데 어머니와 마찰이 있어 아버지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대상들은 왕에게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아들들이 천하를 개발해서 잘 다스리고 있다.’
 아버지 왕이 그 소식을 듣고 우리말로 현묘한지고!, 당시 삭카!라고 말했습니다. 아들들이 열심히 살아 성공을 하고 교화를 잘하니 매우 장한 것입니다. 그래서 4형제 분파의 성이 고타마 중에 샥가파가 된 것입니다.
 깨달음을 얘기하는 중에 먼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자리에 청소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나 어른이나 불자로 자부한다면 조상의 이름자를 알 듯 부처님의 명호가 어떻게 나왔는지는 알아야 겠지요.
 이런 것을 보면 불교의 성격이 드러납니다. 어머니가 죽고 온 계모가 자기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계모와 싸워야 합니까. 아니면 순순히 죽임을 당해야 합니까.

현재 불교 물러빠졌다.

오늘날 불교는 너무 물러빠졌습니다. 참는 것이 좋은 것인지 압니다. 더 이상 참고 견뎌봐야 계모의 살인 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기서 불교의 진면목이 나옵니다. 불교는 남을 이롭게 함과 동시에 나를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왕자들이 길을 떠나 새 왕국을 개척해 현묘한 석가족의 시조가 됐듯 불교의 기본철학은 상대방을 정도로 이끌면서 피해를 주지 않는 현명한 길을 걷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현명한 판단 아래 때로는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지적을 해야 하고 주먹을 내두를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이 자리에 집에서 놀았으면 좋겠다는 유혹을 버리고 올바른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왔습니다.

깨달음까지의 수행이 중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불교에서는 신혜행이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먼저 신(信)은 부처님 말씀에 공감하고 가르침에 따라 사는 것을 목표로 세우는 것입니다. 이는 마음속에 있습니다.
 혜(慧)는 무조건 이런 믿음에 따르는 것이 아닌 지혜를 발휘해 마음 속의 진리를 탐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불교는 고쳐야 할 것을 아직까지도 답습하고 있습니다. ‘시주만 많이하면 돼’,‘절만 많이하면 돼’ 그중 ‘몰라도 된다’는 것이 있습니다. 가끔 선방에서 수좌들이 하는데 아닙니다. 알아야 합니다. 알지 못하고 마구하면 미신입니다. 그럼 무엇을 알아야 하냐.
 정인 정과를 알아야 합니다. 원인을 심는 곳에 열매를 맺는다. 원인을 심지 않으면 열매가 없다. 나쁜 씨를 심지 않으면 나쁜 열매가 없다는 것입니다.
 법문을 들으면 무엇이 남습니까. 부처님 말씀으로 내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핸들, 브레이크, 가속페달이 잘 듣느냐를 점검하는 것처럼 나 자신을 먼저 되돌아보는 것이 깨닫기 전에 필요한 수행입니다.
 행(行)은 이를 세상에 발휘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정인·정과 내 언동이 옳아야 합니다. 행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맞아 죽어도 아닌 것은 NO라고 해야 합니다. 똑바로 아닌 것을 방향잡는 것을 꾸준히 반복하는 것이 행입니다.

용기 있어야 불자
아닌 것은 ‘NO’라고 해라
꾸준한 정진으로 나를 바꿔야

불법이 무엇입니까. 아무리 신나고 즐겁게 놀더라도 나를 잃지 않는 것입니다.
 젊어서는 포교에 역할을 해달라고 해 교도소와 군부대에 많이 다녔습니다. 특히 교도소에는 장기 복역수와 특별면담이 있습니다. 극악수 사형수와 면담을 하는데 ‘어쩌다 이런 처지에 놓였는지’를 물어봤습니다.
 답은 똑같습니다. ‘술 때문에 이렇게 됐다’, ‘친구 때문에 이렇게 됐다’, ‘집안 환경상 이렇게 됐다’는 것입니다.
 “술 마실 때 친구가 협박을 했습니까, 강제로 입을 벌리고 술을 부었습니까, 아니면 본인이 받아서 마신 것입니까. 일을 저지른 것이 어떻게 친구 잘못입니까. 지금이라도 아무도 원망하지 말고 남을 탓하지 마십시오.”
 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바로 나입니다. 내 인생을 어떻게 엮느냐가 내일의 결과로 나타납니다. 불법은 요란스럽게 많이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관리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궁극적으로 나와 남을 이롭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번 기회에 이런 훈련을 잘 소화해 집에 돌아가도록 하십시오.

                                                                                                  현대불교 정리=노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