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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의 역사와 전래
글쓴이 : 총무원 날짜 : 2017-05-26 (금) 18:16 조회 : 1412


율의 역사와 전래



율원장 스님




일불세존의 금구성언이 아난(阿難) 가섭(痂葉) 우피리(優彼離)에 의하여 전해졌으니 아난은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섭은 부처님의 마음을 전했으며 우피리는 부처님의 행을 이어받았다. 우피리존자에 의하여 이어진 부처님의 율행은

인도에서 태사구, 구나구, 실가바, 목건연자제수마사타, 아율타, 제수달다, 가라수말라, 지가나, 수마마마카, 라수,

말나, 담무덕, 조제수, 조제바, 수말나, 전나가, 기마, 우바제수, 법가, 아바야, 제바, 사바 등에 의하여 전해졌다.

중국에서는 마동, 축법난에 의하여 개발된 뒤 지법령, 지겸, 축법호, 축도생, 지루가참에 의하여 새롭게 인식되고

담마가라, 담마지, 축범념, 비마라차, 불타야사에 의하여 초석을 정립한 뒤 법총, 도복, 혜광, 운휘, 운밀, 도봉, 혜총,

혜흠, 대자, 영암, 문강, 암승, 숭복, 지인, 융제, 도심, 제혜, 법림, 명각 등의 율사에 의하여 계승되다가 남산종을 융성하고

그 뒤 윤감, 영지, 역향을 거처 적광, 견월, 정암, 송은, 민연, 진휘, 문혜, 이균 등에 의하여 크게 전수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율보는 백제계율의 시조인 겸익, 율사가 526년 인도에 가서 530년 상가나나에서 율법을 연구하고

인도승 배달다 삼장과 함께 귀국하여 흥륜사에서 28명의 유명한 스님들과 72권의 율서를 번역한 다음 담욱, 혜인 두 스님이

76권의 율서를 지어 시작되었다. 신라는 자장 율사가 636년 당나라에 들어가 종남산 운제사의 도선율사에게서 율을 배우고

643년 귀국하여 대국통(大國統)이 되는 동시에 양산 통도사를 건립하고 금강계단을 창립하였다. 경덕왕 742~764년

진표 율사의 법상종과 함께 계율을 홍포하였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 이조중기(李朝中期) 율종이 거의 없는 상태로

내려오다가 1780~1814년 사이 생존한 대음낭오(大陰郎旿) 율사가 하동 칠불암에서 은사 금담(錦潭)스님과 함께 기도하여

서광을 얻고 그후 금담 청창(淸昌) 진하스님 등에게 전해져 오늘의 율맥으로 이어졌다. 금담 스님은 해인사와 백양사의

율조로서 해인사에서는 포의, 범해, 제산, 용성, 경하, 자운, 고암 등에 의하여 전해지고 백양사에서는 초의, 범해,

제산, 호은, 대흥사, 금해, 만암, 백양사, 묵담 등으로 이어졌다. 청창 스님의 계맥은 범어사에 있어서는 한파, 만하,

성월, 일봉 스님에게로 내려 오다가 일봉에서 운봉, 자운으로 갈라졌고 운봉 스님 밑에는 동산, 석암이 주류를 이루고

자운 스님 밑에 한파, 한파 밑에 만하, 해담, 훼당, 고경, 월하가 이어갔다. 법주사의 계보로는 진하, 그 밑에 벽암,

석교, 석상 등의 율사가 이어 내려 오고 있다. 운허 스님의 불교사전에는 근대 한국의 계맥을 구암사의 백파로부터

전수한 1파와 월출산 대은사가 칠불암에서 서응을 믿은 1파와 중국 답자산 수운사 혜관사에서 받은 팔공산 보답파,

중국 남경에서 전수한 능허사가 성월에게 전한 구월산파, 자장율사의 뒤를 이은 해담파와 오대산 연마파,

중국 창도사에서 받은 용연사 만하파와 장안사의 한파, 북경 염화사 덕명이 전수한 유점사 명봉파, 중국 천도사

 기선에게서 전수받은 법주사 진하파, 북경 원광선사 경연이 전수한 보계산 월운파 등을 두고 있으나 이제 그 계맥을

다 알 수 없다. 현재의 수지자도 알 수 없게 되었으니 정통과 비정통을 가릴 것이 아니라 우리는 원시 불교로 돌아가서

부처님이 설하신 계율의 취지를 따라 실천하는 것으로 그 맥을 전수해야 할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교를 배우지 않고

선도 필요 없다 한다. 선을 배우는 사람은 교가 필요 없다 한다. 선과 교가 불교인양 서로 주종만 따지고 있어

승도(僧徒)를 보아도 불행(佛行)을 볼 수 없게 되었으니 부처님의 말과 마음으로 마른 지혜만 굴리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말과 마음이 귀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말과 마음이 행을 떠나 따로 존재할 수 없다.

첫발을 바로 디뎌야 하나라도 그르침이 없는 올바른 신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