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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이란
글쓴이 : 총무원 날짜 : 2017-04-14 (금) 17:27 조회 : 1003



업이란



법산 스님




중생이라 함은 윤회의 굴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어 업의 인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업이란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이 미래에 선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고 한다. 또는 전세에 지은 선악의 소행으로 말미암아

현세에서 받는 응보, 갈마, 업에는 선업, 악업 또는 비선업, 무기업(선업 또는 악업이라고 확실히 판정하기 어려운 업)의

세가지가 있다. 업을 말하고자 하면 정업, 부정업, 업종자, 십악업 등을 들 수 있으며 정업은 반드시 과보를 불러오는 업을 말하며

부정업은 받을 업이 때와 장소가 정해지지 않은 것을 말한다. 업종자는 선악의 업에 따라 훈습(향내나는 물건이 그 향기를

옮기듯이)된 선악의 종자를 말하며 십악업은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10가지 삼가야 할 나쁜 행동을 말한다.

업이란 짓기 싫다고 하여 안 지을 수가 없는 것이므로 그 경중을 따져 더 이득이 될 수 있는 거을 택하여 지을 줄

알아야 한다.

종경록에 보면 "소가 마신 물은 우유가 되고 독사가 마신 물은 독이 된다" 라고 말하였다. 업을 지을 때에도 독보다는

우유가 될 수 있는 업을 짓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또한 법구경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녹은 쇠에서 생겨

그 쇠를 흠이 가게 함과 같이, 부정한 행자는 스스로 지은 업에 따라 악처로 이끌어가리"라 함과 같이 모든 업은 스스로의 과이니

업을 지을 때는 알아 지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업에 대한 일화는 무수히 많이 전하여지고 있다. 그 한 예로 한 대사가

일곱살 먹은 동자승 두 명을 데리고 산길을 걷고 있었다. 대사가 커다란 구렁이 뼈를 발견하고 앞섣가는 동자에게

묻어주고 오라고 말했다. "스님, 죽은 구렁이 뼈는 묻어 주어 무엇합니까? 저는 싫습니다"하고 스님의 말을 거역하였다.

그러나 뒤따라온 동자는 구렁이 뼈를 두 손으로 거두어 정성껏 묻어 주었다. 한참 걸어 산을 벗어나니 마을이 나타났다.

대사는 으리으리한 기와집 대문 앞에 이르자 구렁이를 묻지 않은 동자승에게 말했다. "네가 이 집에 들어가 시주를 얻어 오너라."

그 집에 들어간 동자승은 얼마간 있다가 풀이 죽은 얼굴로 시무룩하게 나왔다. 이번에는 구렁이를 묻어준 동자가 들어가더니

쌀 석 섬을 시주로 받아 왔다. 대사께서는 두 동자에게 말했다. "먼저 들어간 동자는 주인이 밉게 보아 시주를 하지 않았고

나중에 들어간 동자는 예쁘게 보았기 때문에 시주를 한 것인데, 그 주인의 전생이 아까 뼈를 묻어 준 구렁이였느니라.

사십년 전에 뱀이 죽어 그집 주인으로 환생했던 것이지. 이제 그 까닭을 알겠느냐? 두 동자는 스님의 깊은 말씀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은 항상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움직인다. 그 움직입이 곧 업이다. "업은 의지이다", 업을 피할 곳은 아무 곳에도 없다"

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업은 결코 우리의 힘이 미치지 않는 어떤 신비적인 힘이나 세력에 의해서 주어진 약속이나 운명은

아닌 것이다. 또한 우연히 일어난 것도 아니다. 사후의 행복이나 불행을 심판하기 위한 것도 아니며 전생의 선악을

비추어 보기 위한 것도 아니다. 업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마치 꽃잎과 줄기와 열매가 본래 씨앗 속에 숨어 있는 것과 같다.

알맞은 조건에 이르면 싹이 나고 꽃을 피운다. 업도 그처럼 잠재되어 있고 때가 되면 나타나는 것이다. 업의 법칙을 바로 알기 위한

필수조건은 먼저 우리의 행복과 불행은 자기 자신의 책임하에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업의 노예는 아니다.

스스로 업을 제어할 능력과 힘을 갖고 있다. 선행과 청정한 생활로 스스로 업장을 소멸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업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