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적 삶

지원스님
우리는 열심히 사는것을 최고의 미덕이라 여기지만, 나이를 먹다보면 열심히 사는것보다는 제대로 사는 것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양 극단으로의 치우침을 경계하는 중도의 가르침처럼, 인생 역시 지나치게 긴장하며 자신을 옭아매지도 않고, 또 그렇다고
너무 관대하게 자신을 방치하고 늘어지지도 않도록 할 때, 가장 무리 없는 충실한 삶이 실현되는 것 같다.
율장 피혁건도 에는 지나친 수행의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부처님 당시 소나라는 스님이 있었다.
출가하기 전 그는 참빠라는 나라의 유명한 장자의 아들이었는데 어느 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고는 모든 재산을 방기한 채
출가를 결심했다. 재가불자로서 살아가는 길도 있었지만, 철저한 불도수행의 기반이 되는 청정한 범행의 실천을 위해서는
재가 생활보다 출가자로서의 삶이 더 나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수행에 대해 남다른 정열을 가지고 있었던 소나 스님은
구족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시타림에 머무르며 수행을 시작했다. 시타림이란 시체를 버리는 장소로 한림이라고도 하는데,
사람의 몸이 썩어가는 것을 보며 부정관이나 무상관 등의 관법을 수행하는 장소로 이용되곤 했다. 묘지에서는 곡성이 끊이지 않았고,
문드러져 썩어가는 시신의 냄새로 주변은 숨쉬기도 괴로울 정도이다. 게다가 그 냄새를 맡고 몰려든 새나 짐승들에 의해
죽은 자의 몸은 어느 새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린다.
이런 모습을 가까이서 생생하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시타림은 대표적인 수행장소 가운데 하나로 꼽히지만, 사실 이제 막 출가한
새내기 스님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장소였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소나스님은 시타림에서의 힘겨운 수행을 계속했다.
게다가 쉬는 시간도 없이 밤낮으로 정진하며 경행하다보니 발에 상처나 경행처는 피로 얼룩져 마치 도살장처럼 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나 스님은 홀로 명상을 하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항상 열심히 정진하며
살고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집착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여러가지 번뇌로 마음 역시 자유롭지 못하구나. 나의 속가에는
많은 재산과 보물이 넘쳐나니, 나는 그것들을 마음껏 쓸 수도 있으며, 또 그것들로 복을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차라리 속가로 돌아가 내 재보를 즐기며 복을 짓는 편이 나은 것은 아닐까?" 지나친 정진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게 된 것이었다.
가장 적당한 상태로 조절된 거문고 줄이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처럼 올바른 견해를 가지고 자신의 행동을
돌아볼 수 있는 지혜롭고 여유로운 마음과 함께 하지 못하는 일방적인 정진은 때로는 집착이 되어 스스로를 지배할 수 있다.
복잡다단한 현대인의 삶 속에서 적절한 긴장감과 편안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최적의 상태로 인생을 조율하며
살아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