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것의 으뜸은 ‘보시바라밀’
만일 빈궁한 사람이 재물을 보시하지 못하더라도 남이 보시할 때에 수희(隨喜)하는 마음을 내면 수희하는 복덕이 보시하는것과 다름이 없다.
-인과경-
법시는 자타에 다 이익하니 능히 중생들로 하여금 삼계로부터 뛰어나게 하여 모든 번뇌를 끓고 혜심보시심을 성취하게 한다.
-금광명경-
어떤 장가가 공양할 물건을 가득 싣고 주암산으로 가는 것을 보고 여자 거지가 “저 사람은 전생에 선행을 쌓아 저런 부자가 된 것이다. 내가 지금 공덕을 쌓지 않는다면, 내세에는 더욱 가난해질 것이다” 하며 슬퍼하다 간직해 둔 동전 두 닢을 아낌없이 보시하였다.
원래 보시하는 사람에게는 유나(維那)가 발원문을 외우기로 되어있었지만, 이때는 상좌(上座)가 직접 나서 발원문을 외웠다.
하좌의 비구들이 이를 보고 의아해했지만, 상좌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보시를 마친 여자 거지는 기쁜 마음으로 내려오다 길에서 잠이 들었는데 마침 지나가던 왕이 이를 보고 반하여 왕궁으로 데리고
가 왕비로 맞아들였다.
“제가 비천한 몸으로 전하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은 저를 인도해 주신 스님의 덕이니 시주케 해 주십시오.”
그녀는 왕에게 간청하여 보물을 가득 싣고 스님에게 찾아갔다.
그러나 스님은 이번에는 일어나지도 않고 유나에게 원문을 외우게 하였다. 그녀는 이상하여 스님에게 물어보았다.
“지난날 동전 두 닢을 보시했을 때 스님께서는 직접 발원문을 외워 주셨습니다. 오늘 제가 왕비가 되어 수많은 재보를 보시했는데 발원문을 외워 주시지 않음은 무슨 까닭입니까?”
상좌스님은 왕비를 위해 정법을 가르쳐 주었다.
“부인이 동전 두 닢을 보시했을 때에는 갸륵한 선심만이 충만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자랑스러운 마음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불법에서는 재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베풀음’의 길에는 언설(言說)로써 미치지 못하는 바가 많다. 억압이나 강제에 의한 베품이 아닌 진정에 의한 발심은 스스로의 움직임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러한 베품의 공덕이 얼마만한 것인가를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는 부처임 말씀의 간곡함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일 뿐이다.
오늘날과 같이 빈부의 차가 심하게 느껴질 때 일수록 이웃에게 재물을 나누어 주고, 가치관의 혼란에 의한 정신적 갈등을 겪고 있는 이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하고, 매사에 자신이 없고 직장과 사회에서 피해망상의 노이로제에 신음하는 이에게 존엄한 인간의 당당함을 심어 주는 것이 응당 보살의 할 바인 것이다.
날이 갈수록 개인주의에 침잠하고 친족과 이웃으로부터 멀어지며, 물욕과 향락에 탐닉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이보시의 숭고함과 자비스러움이 더 없는 처방전이 될 수있을 것이다. 때문에 육바라밀에서도 첫 번째가 보시바라밀인 것이다. 모든 것의 으뜸이기 때문이다.
김상범기자
2009-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