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만선북리에 과부 한 명이 살았는데, 남편도 없이 임신을 하더니 곧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열두 살이 되도록 말도 못하고 일어나지도 못하였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아이를 뱀 아이 사동 혹은 사복이라고 불렀더랬지요.
어느 날 어머니가 죽자 사복은 고선사에 있는 원효를 찾아갔습니다. 원효는 예를 다해 그를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복은 답례도 하지 않고 말했지요.
“그대와 내가 옛날에 불경을 싣고 다니던 암소가 이제 죽었으니 나와 함께 장사 지내는 것이 어떻겠는가.”
“좋습니다.”

원효는 얼른 사복과 함께 사복의 집으로 갔습니다. 사복은 원효에게 선을 기르고 악을 없애는 계를 어머니께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원효는 죽은 이 앞에서 빌었습니다.
“세상에 나지 말 것이니, 죽는 것이 괴로우니라. 죽지 말 것이니 세상에 나는 것이 괴로우니라.”
이를 다 들은 사복은 말이 너무 번거롭다고 하였습니다. 원효는 다시 고쳐서 말했습니다.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모두 괴로우니라.”

두 사람은 상여를 메고 활리산(活里山) 동쪽 기슭으로 갔습니다. 이때 원효가 말했습니다. “지혜로운 범을 지혜의 숲에 장사 지내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러자 사복은 게(偈)를 지었습니다.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사라수 사이에서 열반하셨네. 이제 또 그 같은 이가 있어, 연화장 세계로 들어가려 하네.

말을 마치고 띠풀의 줄기를 뽑으니, 그 밑에 명랑하고 맑은 세계가 열렸습니다. 칠보로 장식한 난간에 장엄한 누각이 인간의 세계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가복이 시체를 업고 그 속으로 들어가니 땅은 순식간에 합쳐져 버렸습니다. 원효는 그대로 돌아왔습니다.
후세 사람들이 그를 위해서 금강산 동남쪽에 절을 세우고 도량사라 하였으며, 해마다 3월 14일 점찰법회를 열기도 하였습니다.

점찰법회라 함은 속세의 잘못을 참회하고 반성하면서 자신의 마음의 안락을 얻으려는 법회를 일컫습니다.
원효스님과 사복의 일화를 들으면, 사복이 얼마나 효성이 지극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복은 제대로 걷지 못해, 뱀처럼 기어 다닌다고 하여, 사복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을 것입니다. 지극히 낮은 곳에 임한 자만이 하심을 몸소 배우고, 그 하심으로 인해 도저한 깨달음의 세계를 얻는 모양입니다. 원효스님과 사복의 대화를 들으면 사복의 근기가 상근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소 동 떨어지는 얘기일수도 있겠으나, 사복의 효심을 보면서 필자는 목련존자를 떠올렸습니다.

목련존자는 아귀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제한 신통제일의 존자입니다. 목련존자의 일화는 어느 부분 ‘바리데기’나 ‘심청’ 설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심청은 눈 먼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의 물길도 마다않고 뛰어들어 연꽃으로 화현했습니다. ‘바리데기’도 부모를 구하기 위해 지옥까지 내려가 생명수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바리데기’의 ‘바리’는 버린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원효대사가 말한 ‘세상에 나지 말 것이니, 죽는 것이 괴로우니라. 죽지 말 것이니 세상에 나는 것이 괴로우니라.’라는 축원이나 사복의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사라수 사이에서 열반하셨네. 이제 또 그 같은 이가 있어, 연화장 세계로 들어가려 하네.’라는 게송에는 어디에서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대목이 없습니다.

목련존자가 어머니를 구한 일도, 바리데기가 생명수를 구한 일도 어쩌면 마음 안에서의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효심이 지극한 자식이 부모를 보낼 때의 심정이 오죽하겠습니까? 그마저도 이겨내는 게 자식의 몫이라는 것을 사복은 일깨워줍니다. 〈태고종 종회부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