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소희를 물으면 '불조정전'이라고 하며, 또한 '교외별전'이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중국에는 '교(敎)'란 우선 경 밖에는 없다. 그 이유야말로 중국인은 경의 소개와 번역에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미 수세기에 이른다.
그런데도 지금의 그들은 그것의 공적을 경시하고, 별전이 있다고 하며, 그저 대좌해서 불조의 정전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 이상한 언설의 기미를 찾아보면 그 곳에는 중국인의 자질과 깊은 뿌리를 내린 불교의 새로운 생각이 있으며, 그것을 지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이미 중국인의 불교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물며 붓다 고타마의 가르침은 새로운 흐름을 수용하면서 더욱 도도하게 큰 강이 되어 동방의 나라들을 적시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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