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나는 용렬하고
어리석고 지혜가 부족하여 비록 불법을 공부한지는 여러 해가 지났지만,
여태껏 불법의 심오한
이치를 깨닫지 못하였다.
비록
전수(專修)염불을 하고는 있지만 극락세계 왕생에 대하여
시종 자신이 없었다.
번뇌 망상은 마치
폭풍이 불고 소나기가 내리듯이 잠시도 멈추질 않았고,
억지로 부처님의
명호로 짓누르려고 하면 도리어 더욱더 거세지기만 하였다.
그래서 오랜 시간동안을 매일같이 방황하였으며 의지할 데가 없어,
늘 걱정되고
불안하였다.
다행히도 나중에 정토종의 선도류(善導流)
계열의 저술들을
접하게 되었는데,
글을 읽는 순간 문득
시원한 물줄기가 가슴 속 깊이 흘러드는 것 같았다.
아!
본래 아미타불께서는
십겁이란 세월동안 항상 우리처럼 유랑(流浪)하고 있는 고아들을 부르고
계시며,
절실한 마음으로
우리들이 하루 속히 고향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시는구나!
이 인연으로 우리
모두가 비록 깊고 무거운 업력을 가진 범부들이지만 역시 모두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이것은 완전히
아미타불의 원력에 의지한 것이므로,
오로지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기만 하면 바로 아미타불의 대원력의 배에 타고 있는 것과도 같아서,
반드시 극락세계 내
고향에 안온(安穩)하게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2009년 여름,
대중(大衆)들이 중국 심양에서 정토법문을 듣기 위해
혜정법사(慧淨法師)님을 초청하였는데,
자비하신 법사님께서는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법문을 하는 동안,
나는 스님 곁에서
법문을 들으면서 법희(法喜)로 충만되었고,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스님의 법문은
처음부터 끝까지 심오하고 현묘(玄妙)한 이론들을 언급하시지 않으면서 완전히 당신
자신의 진실한 신앙의 발로였던 것이다.
예를 들어 법문
중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이러한 신앙은 바로 당신의
생명이다.
신앙이 있다면
당신에게는 생명이 있는 것이고,
신앙이 없다면
당신에겐 생명이 없는 것이다.
해탈의 생명이 없으며
성불의 생명 또한 없다.
따라서 신앙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이고 가장 중요하다.
우리에게는 부모님도
중요하고 자식도 중요하며,
남편과 아내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맨 나중에는
전부 우리를 버리고 떠나게 된다.
결국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무아미타불 뿐이고,
오직 우리 자신의
신앙뿐이다."
이런 말씀들은
구구절절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며 가슴을 설레게 하였고,
말씀마다 철저하게
진리를 보여 주셨는데,
한 치의 꾸밈도 없이
완전히 진실한 믿음의 표출이셨다.
초학자(初學者)들에 대하여 스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들은,"나는 염불을 하는데 숫자를 정하지 않고
애써서 억지로 하지도 않는다.
염불은 제 마음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항상 부처님을 생각하며 염불을 하고 있다."라 고 말하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그 사람이 염불을
하는데 이미 습관이 되어 있어서,
익숙한 것이 생소하게
바뀌고 생소한 것이 익숙하게 되었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온종일 망상과 잡념 속에서 살면서 하루 동안 염불한 숫자를 통계해 보면 몇백 번도 채
안될 것이다.
여러분이 만약
조석으로 시간을 정해서 조용히 앉아 염불을 하거나,
아니면 하루 동안
규칙적으로 천 번,
오천
번,
만 번의 숫자를
정해서 염불을 한다면,
아무리 염불을 못해도
최소한 정해놓은 천 번,
오천
번,
만 번의 숫자는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초학자들은 매일 염불하는 숫자를 정해두어야 한다.
조석으로 조용히
앉아서 염불을 하는 것 외에,
만약 낮에도 시간을
낼 수 있다면 숫자를 정해서 염불을 하셔야 한다.
이렇게 오래오래
하다보면 습관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설사
여러분이 염불의 숫자를 정하지 않고,
또 염주를 돌리며
염불을 하지 않더라도 자연히 부처님을 떠올리며 염불을 하게 되는데,
입으로는 자신도
모르게 자주 염불을 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저절로
그렇게 될 것이다."
평이하고
통속적이었으며,
낭랑하고 힘찬 이런
말씀들은 현대인들의 경망스럽고 나태한 병폐를 날카롭게 지적하였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부끄러운 마음을 일으키고「완렴나립(頑廉懦立)」의 효과를 거두었으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인연 있는
연우(蓮友)님들이 한 걸음 더 나아가 혜정법사님의
법문을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하여 나의 천박함을 헤아리지 않고 법문하신 내용에 대하여 간략히 목차를 편집하고 정리를
하였다.
하지만 수준에 한계가 있으므로 불가피하게 부족한 부분이 있으니,
여러 대덕님들께서
바로 잡아주시길 간절히 청하는 바이다.
부끄러운 후학
진우(陳羽)
심양 대불사에서 삼가
적음.
제1장. 두 가지 정토
정토법문을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수당(수나라와 당나라)의 정토이고,
둘째는
송명(송나라와 명나라)의 정토이다.
수당의 정토는 순수한
정토이다.
수나라와 당나라의
정토란 곧 정토종 선도류(善導流)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위로
용수(龍樹),
천친(天親),
담란(曇鸞),
도작(道綽)을 이어 선도(善導)에 이르기까지 전해져온 법맥의
정토교리사상이다.
이 법맥은 매우
순수한 정토여서,
잡다한 교리가 섞이지
않았고 장황하여 번잡하지가 않다.
순수하기 때문에
정확하다는 것인데 잡다한 교리가 섞이지 않고,
장황하여 번잡하지
않으므로 두루뭉술하지가 않다.
이 법맥을 의지해
수행을 한다면,
곧
이른바「백 명이면 백 명이
왕생하고,
만 명이면 만 명이
왕생을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이 법문에 의지해서
수행만 한다면 어떤 사람이라도 극락세계에 왕생을 할 수 있으며,
금생에 바로 극락세계
성중(聖衆)
가운데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수당의
정토로서,
선도류 법맥의
정토법문을 가리킨다.
송명의 정토는 잡다한 교리가 섞인
정토이다.
송나라와 명나라의
정토란 바로 북송(北宋)때 부터 줄곧 명나라 내지는 청나라에
이르기까지의 정토다.
이 정토와
수당(隋唐)시대 선도대사의 정토를 비교하자면 비록
똑같은 정토법문이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송명의 정토는 이미
천태,
화엄,
선(禪)의 사상이 그 속에 섞여있기 때문에
교리적으로는 매우 풍부하고 아주 광대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성도문의 사상이 들어가 있으므로,
그 결과
수학(修學)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왕생의 큰일에 대하여
불확정적이고 불안한 마음을 갖게 하였다.
법보의 유실
무엇 때문에 송명의
정토가 순수하지 않다고 말하는가?
선도대사의 이
정토법맥과 관련된 저서들인,
천친(세친)보살의《왕생론》,
담란대사의《왕생론주》,
도작대사의《안락집》,
선도대사의《5부 9권》은 당나라 말엽에 점차적으로 중국에서
유실되어 일본으로 전해졌는데,
일본에서 그 빛을
크게 발하게 되었다.
청나라 말엽에 이르러
양인산(楊仁山)
거사님께서 일본에
거주하는 지인을 통하여 중국에서 유실된 경론들을 다시 중국으로 반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