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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부인설화가일깨워주는교훈
글쓴이 : 총무원 날짜 : 2015-06-23 (화) 12:30 조회 : 1161
수로부인 설화가 일깨워주는 교훈

노인이 꽃을 꺾어 바치듯 정진해야

“그것이 필시 꽃이었던가,/ 절벽에 핀 한 송이/ 철쭉꽃,/ 그것이 필시 나비였던가./ 그 꽃에 사뿐히 접은 나래,/ 길 끝나 절벽 있고/ 절벽 끝에 하늘 있느니/ 하늘 바라 면벽 천년 염화시중은/ 아직 눈빛이 찬데/ 그 미소 허공에 향기롭구나./ 산이 산이 아니고 절이 절이 아니고/ 산 밖에 산이 있고 절 밖에 절 있느니/ 절벽에 올라/ 꽃 꺾어 오라시던 당신의 말씀,/ 그것이 정녕 꽃이었던가./ 기르던 소의 고삐를 놓아야만/ 새처럼 날 수 있는 그 길,/ 그것이 필시 벽이었던가.”
이상은 오세영 시인의 〈노인헌화가〉입니다. 오세영의 시인의 〈노인헌화가〉는 미당 서정주의 〈노인헌화가〉를 모티브로 하고 있고, 미당 서정주의 〈노인헌화가〉는 삼국유사의 설화 중 하나인 수로부인 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문체미학이 빛나는 윤대녕의 〈신라의 푸른 길〉도 수로부인 설화를 배경으로 합니다. 그렇다면 수로부인 설화는 얼마나 매혹적인 얘기이기에 현대문학에서 꾸준히 언급되는 것일까요? 간단히 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한번은 수로부인이 강릉태수로 부임해가는 남편을 따라 가다가 어느 해변에서 점심을 먹었다. 길 옆 바다를 마주보고 깎아지른 바위 절벽이 높이가 천 길이나 되었다.
거기에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수로가 그것을 보고 “꽃을 꺾어 바칠 사람 누구 없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종들이 “사람의 발로는 다가갈 수 없는 곳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때 한 노인이 암소를 몰고 가다가 수로부인의 말을 듣고 그 꽃을 꺾어서는 노래까지 지어 바쳤다.
“자줏빛 바위 가에/ 잡은 손 암소를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또 한번은 동해 용(龍)이 수로부인을 바다 속으로 끌고 가버렸다. 수로 남편이 뒹굴며 땅을 쳤지만 별 수 없었다. 그 때 한 노인이 다음 노래를 부르면 나올 것이라고 가르쳐줬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놓아라/ 남의 부인 앗아간 그 죄 얼마나 큰가/ 네 만일 내놓지 않는다면/ 그물을 쳐서 구워서 먹을 테다.”
과연 그의 남편이 그대로 했더니 용이 부인을 받들고 와서 바쳤다. 그러나 정작 수로부인은 “바다 속 일곱 가지 보물로 장식된 용궁에서, 음식들은 달고 매끈하며 향기롭고 깨끗하여, 사람 사는 세상에서 지어진 것이 아니었다”고 꿈꾸듯 말했다.
〈삼국유사〉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고운기 교수는 수로부인을 미시족의 원조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남정네의 애간장을 녹이는 여성은 있기 마련인데, 아마도 수로부인이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였던 모양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일견에서는 노인을 수행자로 보는 이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의 주장처럼 꽃과 소는 깨달음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꽃은 만개한 깨달음을, 소는 심우도의 소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게 보면 노인은 수행자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노인은 수로부인의 아름다움에 눈이 멀어 파계를 한 것일까요? 아니면,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한 것일까요? 의견은 분분할 테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후자이리라 믿고 싶습니다.
해석이야 어찌됐든, 수로부인 설화이야기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수로부인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부처님을 향한 마음이 됐든, 이성을 향한 마음이 됐든, 그 사모하는 마음은 적어도 노인이 수로부인에게 꽃을 받치듯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노인이 수로부인에게 꽃을 바치듯, 오늘 저녁에는 아내에게 꽃을 바쳐보십시오. 그리고, 다음 법회에는 부처님 전에 헌화를 해보십시오. 그리고, 수행자들은 노인이 바위절벽의 꽃을 꺾어 바치는 마음으로 깨달음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마음에 맑은 향내가 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