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스님은 신라 제41대 헌덕대왕(憲德大王)의 아들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효성과 우애가 깊었으며 타고난 성품이 맑고 지혜로웠다고 전합니다. 심지스님은 열다섯 살에 머리를 깎고 출가해 용맹 정진했습니다. 심지스님이 중악에 거처하며 열심히 수도 정진하던 때의 일이 《삼국유사》에는 전해져 내려옵니다. 심지스님은 속리산의 영심스님이 진표율사(眞表律師)가 지니고 있던 부처님의 뼈로 만든 간자(佛骨簡子)를 전해 받은 기념으로 법회를 성대하게 연다는 말을 듣고 그곳에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심지스님이 법회에 갔을 때는 법회가 시작된 뒤여서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법회가 끝나고 심지스님이 중악으로 돌아가려고 걸음을 재촉하는데 문득 자신의 옷깃 사이에 간자 두 개가 끼어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는 너무 놀라 그 길로 영심스님께 가서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말했습니다. “간지는 함 속에 간직해 두었네. 그럴 리가 있는가?” 조사해 보니 함안에 두었던 간자는 온데 간 데 없었습니다. 영심스님은 ‘기이한 일이 다 있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간자를 겹겹이 싸서 함 속에 잘 간직하였습니다.
심지스님이 다시 길을 나서려는데 문득 보니 간자가 또 옷깃 사이에 끼어 있었습니다. 놀란 심지스님은 영심스님에게 돌아와 사실을 고했습니다. 영심스님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습니다. “부처님의 뜻이 그대에게 있으니 그대는 받들어 행하도록 하게.” 영심스님은 간자를 심지스님에게 건넸습니다.
심지스님은 간자를 받아 머리에 이고 중악으로 돌아갔습니다. 중악으로 들어가니 중악의 신이 신선 아이 둘을 데리고 나와 산꼭대기에서 심지스님을 공손히 맞이했습니다. 신은 그를 인도하여 바위 위로 데려가더니 그곳에 앉히고 자신은 바위 밑으로 돌아가 엎드리며 공손히 계를 받았습니다. 이때 심지스님이 말했습니다.
“이제 땅을 가려서 부처님과 간자를 모시려는데, 이것은 우리가 함부로 정할 일이 못됩니다. 우리 셋이 함께 높은 곳에 올라가 자를 던져 자리를 점치도록 합시다.” 심지스님은 신들과 함께 산마루로 올라가서 서쪽을 향해 간자를 던졌습니다. 간자는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 이때 신이 노래를 지어 불렀습니다.
막혔던 바위 멀리 물러가니 숫돌처럼 평평하고, 낙엽이 날아 흩어지니 앞길이 훤해지네. 부처의 뼈로 만든 간자를 찾아 얻어서, 깨끗한 곳에 모셔 두고 정성 드리려 하네.
노래를 마치고 간자를 찾아보니 간자는 숲 속 샘에 있었습니다. 간자를 찾은 그 자리에 사찰을 짓고 간자를 소중히 모셔 두었습니다. 지금 동화사(桐華寺) 첨당(籤堂) 북쪽에 있는 작은 우물이 바로 긴자가 모신 곳이라고 합니다. 심지스님의 일화는 세상사 인연이란 다 정해져 있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함 속에 잘 모셔둔 간자가 왜 심지스님의 옷깃 사이에 있었던 것일까요?
임영조 시인은 <도꼬마리 씨 하나>라는 작품을 통해 인연의 소중함을 말했습니다. 시인은 산행 끝에 따라온 도꼬마리 씨 하나를 보면서 아내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왜 하필 내게 붙어왔을까?/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예까지 따라온 여자 같은/ 어디에 그만 안녕 떼어놓지 못하고/ 이러구러 함께 온 도꼬마리씨 같은/ 아내여, 내친 김에 그냥/ 갈 데까지 가보는 거다/ 서로가 서로에게 빚이 있다면/ 할부금 갚듯 정 주고 사는 거지 뭐/ 그리고 깨끗하게 늙는 일이다’이라고 노래합니다. 옷깃만 스쳐도 몇 겁의 인연이라고 합니다. 오늘 저녁에는 같은 베개를 베고 자는 식구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십시오. 그러면, 참 맑은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