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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라즈니시의 금강경(5)
글쓴이 : 총무원 날짜 : 2015-04-15 (수) 13:54 조회 : 673

제2장 선현기청분-수보리가 가르침을 청함.

<원문>

그때에 장로 수부티(須菩提)가 그 대중들 곁으로 와서 앉았다.
수부티는 다의 위대한 제자들 중 한명이다.
그 다음에 그가 자리에 일어나.....

... 아난다가 다시 모든 것을 되풀이하여 말한다. 왜냐하면 수부티 또한 보통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거의 붓다가 된 사람이다. 그는 경계선에 서 있다. 그는 아무 때라도 붓다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아난다는 다시 되풀이한다.

<제2장 원문>

그 다음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웃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오른 쪽 무릎을 땅에 대고
두 손을 모아 스승께 합장했다.
그리고는 스승께 이렇게 여쭈었다.
"스승이시여,놀라운 일입니다. 참으로 경탄할 일입니다,선서(善逝)이시여.
얼마나 많은 보디사트바들이,그 위대한 존재들이
여래께서 베풀어 주시는 최고의 은덕에 의해 도움을 받았는지!
그런데 스승이시여,이미 보디사트바의 길로 들어선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어떻게 나아가야 하며, 어떻게 생각을 다스려야 합니까?"

... 수부티는 거의 깨달음에 가까이 간 사람이다. 그는 보디사트바이다. 보디사트바는 붓다가 될 준비가 된 사람,거의 붓다의 경지에 근접한 사람이다. 한 발만 더 내디디면 그는 붓다가 될 것이다. 보디사트바는 이미 99도로 끓고 있는 사람이다. 100도가 되면 그는 증발해버릴 것이다. 그러나 보디사트바는 99도에 좀더 오래 머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래야 그의 넘치는 자비심으로 사람들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100도로 끓어버리면 그는 저 너머로 가버린다.....

가떼 가떼 파라가떼 파라삼가떼 보디 스와하.

... 그때 그는 저 너머로 아득히 가버린다. 그때에는 이쪽 기슭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접촉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가장 큰 도움은 99도로 끓고있는 사람들로부터 가능하다. 그들이 가장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아직 깨달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안다. 깨닫지 못한 사람들의 언어를 안다. 그들은 아직 이쪽 기슭의 사람들과 함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의미에서 보면 이미 99퍼센트는 저쪽 기슭로 넘어간 사람들이다. 나머지 1퍼센트가 그들을 이쪽 기슭과 연결시켜 준다.

... 그러므로 보디사트바는 거의 깨달음에 도달했으면서도 사람들을 돕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이쪽 기슭에 남아있으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그는 이미 도달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도달한 바를 나누어주기 원한다. 그는 이미 진리를 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안 것을 나누어주기 원한다. 수 많은 사람들이 어둠 속을 헤매고 있다. 그는 그들에게 자신의 빛을,자기의 사랑을 나누어주기 원한다.
수부티는 보디사트바이다. 그래서 아난다는 붓다에 대해 기록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에 대해 기록한다.

그 다음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 상상해 보라. 눈 앞에 그려 보라. 보디사트바가 일어서고 있다. 그의 의식은 철저하게 깨어있다. 그는 로보트처럼 일어서지 않는다. 호흡 하나 놓치지 않는다. 그는 숨결 하나까지 완전히 알고 있다. 모르는 채 지나치는 것이 없다. 그는 주의깊게 관조하고 있다. 카톨릭에서 '묵상(默想)'이라고 부르는 것을 불교에서는 '삼마사티(sammasati)',정념(正念)이라고 부른다. 정념 또는 묵상,관조(觀照)하며 사는 것,단 한순간도 무의식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것, 그것이 사마사티이다.

그 다음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어깨에 웃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오른 쪽 무릎을 땅에 대고
두 손을 모아 스승께 합장했다.
그리고는 스승께 이렇게 여쭈었다.....

... 이것을 잊지 말라. 거의 붓다의 경지에 이른 보디사트바도 붓다에게는 지극한 감사를 표하며 엎드려 절한다.

스승이시여,놀라운 일입니다. 참으로 경탄할 일입니다,선서(善逝)이시여.....

... 선서(善逝)는 쪽 기슭에 도달한 자를 뜻한다. 수부티는 이쪽 기슭에 있지만 붓다는 저쪽 기슭에 있다. 수부티는 그것을 이해할만한 경지에 도달했다. 그는 저쪽 기슭을 볼 수 있다. 저쪽 기슭에 서 있는 붓다를 볼 수 있다.

선서(善逝)이시여.....

이 '선서(善逝)'라는 단어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그 중 하나는,저쪽 기슭에 도달한 자를 말한다.다른 하나는,명상의 궁극점에 도달한 자를 말한다.
붓다는 명상의 궁극점을 향해 가는데에는 여덟 단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 여덟번째 단계에 도달한 사람이 '선서(善逝)'로 불려진다. 선서는 저쪽 기슭에 도달한 자이며 명상의 궁극에 이른 사람이다. 그 의미는 똑같다. 사마디에 도달한 사람,궁극의 사마디에 이른 사람은 저쪽 기슭로 가버린다.그는 더 이상 이쪽 기슭에 있지 않다. 그것이 선서(善逝),'잘 간 사람(Well-Gone)'이라는 말의 의미이다. 그는 갔다. 완전히 건너갔다. 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하나의 비어있음이다. 자아가 사라졌다. 연기처럼 증발되었다.

스승이시여,놀라운 일입니다. 참으로 경탄할 일입니다,선서(善逝)이시여.
얼마나 많은 보디사트바들이,그 위대한 존재들이
여래께서 베풀어 주시는 최고의 은덕에 의해 도움을 받았는지!

... '여래(如來;Tathagata)'는 저쪽 기슭로 건너간 사람을 의미하는 불교용어이다. 수부티는 이렇게 말한다.
"얼마나 많은 도움이 베풀어졌는지 놀라운 일입니다. 진정 경탄할 일입니다. 스승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주었는지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는 받을 자격조차 없는데 스승님은 끊임없이 주고 계십니다."

스승이시여,놀라운 일입니다. 참으로 경탄할 일입니다,선서(善逝)이시여.
얼마나 많은 보디사트바들이,그 위대한 존재들이
여래께서 베풀어 주시는 최고의 은덕에 의해 도움을 받았는지!
그런데 스승이시여,이미 보디사트바의 길로 들어선 사람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 이쪽 기슭에 좀더 남아있기로 결심한 사람은.....

이미 보디사트바의 길로 들어선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어떻게 나아가야 하며,
어떻게 생각을 다스려야 합니까?"

... 그는 무엇을 묻고있는 것인가? 그는 그대들 대다수와는 무관할지도 모르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 질문은 오직 그대가 보디사트바가 되었을 때에만 해당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날엔가 그대 또한 보디사트바가 될 것이다. 언젠가 이 질문이 그대와 상관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명상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수부티는 말한다.
"보디사트바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저쪽 기슭에 대한 유혹이 너무 강합니다. 저쪽 기슭이 강력한 힘으로 우리를 잡아당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쪽 기슭에 어떻게 서야 합니까? 우리는 사람들을 돕고 싶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도울 수 있습니까? 저쪽 기슭이 우리는 부르고 있습니다. 자석처럼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이쪽 기슭에 설 수 있는 방법을 일러 주십시오. 어떻게 하면 이쪽 기슭에 다시 뿌리내릴 수 있는 가르쳐 주십시오. 우리는 이미 완전히 뿌리뽑혔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 뿌리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뿌리의 99퍼센트가 이미 사라졌습니다."

... 생각해 보라. 뿌리의 99퍼센트가 사라진 나무를 상상해 보라. 단 1퍼센트의 뿌리만 남았다. 그 나무가 지금 이렇게 묻고 있다.
"이제 나는 어떻게 서 있어야 합니까? 나는 곧 쓰러지려 합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좀더 지탱할 수 있다면 사람들에게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며,그들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나 또한 도움이 필요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당신께서 나를 도와 주었습니다. 이제 다른 사람들이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나는 그들을 도와 주어야 합니다."

... 이것이 스승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스승은 그대를 도와 주었다. 그런데 스승은 도움이 필요없다. 그러니 스승에게 진 빚을 어떻게 갚아야한단 말인가? 무엇을 해야만 그 빚을 갚을 수 있는가? 스승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아직도 어둠 속을 헤매며 좌충우돌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이다. 그것이 그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스승이 그대에게 했던 모든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행하라. 그러면 그대는 빚을 갚는 것이다.
수부티는 "이쪽 기슭에 어떻게 서야 합니까?"하고 묻는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다.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수부티는 말한다.
"어덯게 나아가야 하며,사람들을 돕기 시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들의 불행이 모두 허구라는 것을 압니다. 이제 우리는 그들이 다만 악몽에 시달리고 있음을 압니다. 그들의 불행은 실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들이 새끼줄을 뱀으로 생각하며 벌벌 떨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은 터무니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을 돕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 또한 과거에 그런 처지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한때 무서워서 벌벌떨고 울부짖고 비명을 지른 적이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그 모든 것이 한낱 꿈이고 환상이라는 것을 알았지만,우리도 한때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린 적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라. 상대방이 말도 안되는 소리를 떠들고 있는 것을 안다면,그에게 아무 상처도 없다는 것을 안다면.....

"그렇군. 그 놈들이 여기에 있다."

수부티가 묻는다.
"스승이시여,먼저 우리에게 이 곳에 어떻게 서야하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우리의 뿌리가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어떻게 나아가야하며,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일러 주십시오. 사람들은 불행하다는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의 모든 불행은 거기에서 기인합니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이 허구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일해야 합니까?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생각을 다스려야 합니까?"
그는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 생각을 다스리는 법을 가르쳐 달라니? 보디사트바에게는 생각이 없다. 그대가 갖고 있는 것과 같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제 단 하나의 생각이 남았다. 그것은 저쪽 기슭에 대한 생각이다.....저쪽 기슭이 끊임없이 그를 부른다. 문이 활짝 열려 있다.그는 언제라도 전적인 지복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문이 활짝 열려 있는데 그는 문간에 자기를 잡아두고 있다.
먼저,그는 수 많은 생동안 윤회를 거듭하며 문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왔다. 그 다음에는 문을 발견하고,수 많은 생 동안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이제 문이 활짝 열렸다. 그런데 붓다가 이렇게 말한다.
"기다려라. 문 밖에 남아 있으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지 않느냐?"
자연히 문으로 들어가고 싶은 커다란 욕망이,저 너머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은 열망이 끓어오를 것이다. 지금 수부티는 그것에 대해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