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조계종 ▒ -혜인스님, 중국남경중의학대학,불교대학림

불교조계종

자료실
Home >자료실 > 경전 공부실 경전 공부실
총 게시물 781건, 최근 0 건
   
오쇼 라즈니시의 금강경(10)
글쓴이 : 총무원 날짜 : 2015-06-18 (목) 12:56 조회 : 760

오쇼 라즈니시의 금강경

제5장 여리실견

<원문>


스승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수부티여,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를 어떤 특징을 지닌 이로 볼 수 있겠느냐?"
수부티가 대답했다.
"아닙니다.실로 그렇지 않습니다.
여래께서 '특징을 지닌다.'고 가르치신 것은
곧 아무 표시도 지니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무릇 어떤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거짓이며,
아무 표시도 없다면 그것은 거짓이 아니다.
그러므로 아무 특징도 없는 것을
여래의 특징으로 보아야 한다."

이것은 수수께끼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겉으로는 수수께끼처럼 보이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붓다가 말하는 경지에서는 모든 것이 모순이 되어 버린다. 모순이 유일한 표현수단이다. 그토록 풍요로운 존재의 차원에서는 모순적일 수 밖에 없다. 논리가 모든 의미를 상실한다. 만일 논리적이기를 고집한다면 그 풍요로운 차원에서 움직이기가 불가능할 것이며,진리를 표현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 진리는 모순적일 수 밖에 없다.
붓다는 말한다.
"수부티여,그가 지닌 특징으로 여래임을 알아볼 수 있느냐?"
불교경전에서는 붓다가 초인적인 존재로서 서른 두 가지 특징을 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서른 두 가지 특징이 그가 붓다임을 알려주는 결정적인 단서라고 말할 수 있는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대는 다른 눈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의 눈은 오직 외부적인 특징만을 볼 수 있다. 그대는 표시나 특징에 의해 살아간다. 그러나 수부티처럼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람,붓다의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람에게는 그런 특징이 아무 의미도 없다. 게다가 무엇인가 소유한다는 것은 붓다의 특성이 아니다. 그 서른 두 가지 특징조차 그렇다. 그 특징들은 붓다와 무관하다. 붓다는 전적으로 평범할 수 밖에 없다. 그는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붓다의 진짜 특징이다.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그것이 붓다의 진정한 표식이다. 깨달음조차 소유하지 않는 것,그것이 깨달은 자의 진정한 표식이다. 이런 까닭에 이 경전의 말들이 모순되는 것이다.

진정한 붓다는 자신을 붓다라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모든 주장은 거짓이기 때문이다. 주장한다는 것은 곧 사기꾼이 되는 것과 같다. 붓다는 아무 것도 주장하지 않는다. 그는 주장할 게 없다. 그는 아무 것도 욕망하지 않는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과시하는데 관심이 없다. 그는 자신이 누구라는 것에 대해 사람들을 확신시키는데 무관심하다. 그는 전체적으로 존재한다. 그대는 그의 존재에 참여할 수 있다. 그의 춤 안에서 그와 함께 어울릴 수 있으며,그의 축복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무엇인가 증명하기 위해 거기에 있는 게 아니다. 무엇인가 증명한다는 것은 아직 그것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을 드러낼 뿐이다. 붓다는 자신을 방어하지 않는다.

그런 외부적인 특징들은 붓다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서도 만들어질 수 있다. 어떤 특징이든지 가능하다. 예를 들어,붓다의 호흡은 너무나 고요하다. 마치 숨쉬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붓다가 아닌 요가 수행자들도 그런 특징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대는 호흡수련을 할 수 있다.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여 숨을 거의 정지상태로 몰아갈 수 있다. 호흡에 관한 한 붓다를 능가할 수도 있다.

그의 호흡이 느린 것은 그에게 서두름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호흡수련을 쌓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의 호흡이 느린 것은 그가 아무 데로도 가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욕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의 호흡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만큼 느리게 일어나는 이유이다. 그가 훌륭한 요가수행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욕망이 떨어져 나가고,서두름이 사라졌기 때문에 호흡이 그토록 느린 것이다. 그는 아침 산책을 즐기듯이 살아간다. 그는 아무데로도 가지 않는다. 그에게는 미래도 없고 걱정도 없다.

이런 현상을 관찰해 보았는가? 근심걱정에 빠져 있을 때에는 호흡이 고르지 못하다. 화가 났을 때에는 호흡이 거칠어진다. 사랑을 나누거나 열정이 솟구칠 때 그대는 숨을 가쁘게 몰아쉰다. 그대의 호흡이 열에 들뜬다. 붓다의 열정은 자비가 되었다. 욕망이 떨어져 나가고 사라졌다.....잘 익은 열매가 땅에 떨어지듯이 욕망이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그의 호흡은 느려졌다. 느려지고 또 느려졌다.
그러나 만일 이런 것이 붓다의 고유한 특징이라면,붓다를 가장(假裝)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지 이런 특징을 내보일 수 있다. 붓다는 철저하게 침묵에 잠겨 고요히 앉아 있다. 그는 자세를 바꾸지 않고 한결같은 자세로 앉아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다. 다만 약간의 훈련이 필요할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훈련한다고 해서 붓다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붓다는 말한다.....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무릇 어떤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거짓이며.....

만일 어떤 사람이 "보라, 나는 붓다의 이런 특징을 갖고 있다. 나는 붓다이다!"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주장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것이 거짓이라는 증거이다.

아무 표시도 없다면 그것은 거짓이 아니다.
그러므로 아무 특징도 없는 것을
여래의 특징으로 보아야 한다."

붓다가 수부티에게 갑자기 이렇게 묻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수부티에게 어떤 욕망이 일어났음에 틀림없다. 이것을 이해해야 한다. 수부티 안에 어떤 욕망이 하나 일어났음에 틀림없다. 그는 붓다가 되려는 문턱에 서 있다. 그래서 하나의 욕망이 일어났을 것이다.
"곧 나도 서른 두 가지 특징을 지닐 것이다. 곧 나도 붓다가 될 것이며,붓다로 인정받을 것이다. 나 또한 붓다의 서른 두 가지 특징을 지니게 될 것이다."

이것은 무의식적인 욕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의 파문이.....붓다와 그의 서른 두 가지 특징,그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본다면 누군들 그렇게 되고싶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제 수부티는 그렇게 될 수 있는 경지에 와 있다. 그는 붓다가 되려는 문턱에 서 있다. 붓다가 주지 않는 것처럼 주라고 말하는 동안에,주는 자와 받는 자 그리고 선물에 대한 생각없이 준다면 그대의 공덕이 커질 것이라고 말하는 동안에.....이런 말을 들으면서 수부티는 무엇인가 염원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 염원은 알아채기 힘든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만큼 아주 작은 하나의 씨앗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틀림없이 이런 바램이 있었을 것이다.

"그 커다란 공덕으로 말미암아 나는 붓다가 될 것이다. 그리고 붓다와 똑같은 서른 두 가지의 특징을 갖게 될 것이다. 붓다를 둘러싸고 있는 것과 똑같은 향기,똑같은 우아함,똑같은 광채,똑같은 축복,아아....."
수부티의 마음 속 어딘가에 이런 욕망이 일어났음에 틀림없다.
그런 욕망을 보고 붓다가 말한다.
"수부티여,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를 어떤 특징을 지닌 이로 볼 수 있겠느냐?"
수부티의 의식 또는 무의식에 잠재해있는 이런 흐름을 알지 못한다면 그대는 금강경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