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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불교학술원 이종수 HK연구교수가 1854년 필사된 ‘팔상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1854년 필사된 ‘팔상록(八相錄)’ 뒷면에서 병인양요를 12년 앞둔 강화도의 군사방어현황을 상세히 알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됐다. 이 자료는 외규장각에 보관된 군사문서에 불교내용이 기록됐다는 점에서 왕실 및 관인 층의 불교신앙을 추적할 수 있는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동국대 불교학술원은 9월11일 동국대 본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상반기 강원도 평창 지암정사가 소장하고 있는 도서 170책에 대한 목록을 조사하던 중 1854년 필사된 언해본 ‘팔상록’(권4, 1책본)의 이면에서 군수물자의 내역을 담은 관문서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불교학술원 조사 결과 이 문서는 ‘강화부부상각진보상각돈대상각양군기잡물수목(江華府 府上各鎭堡上各墩臺上各樣軍器雜物數目, 이하 강화 군기수목)’으로 1854년 2월13일 현재 강화부 각 진보 및 돈대 등의 각종 군기 현황을 강화유수(江華留守)의 책임 아래 정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에는 강화부 전체의 군기상황뿐 아니라 각 진보 및 돈대, 봉수대, 4영(營) 등에 배치된 무기 및 군수 물자 현황이 자세히 정리돼 있다. 화약, 소총, 장총, 활과 화살, 기계 활인 궁노, 대포인 불랑기 등 종류별 수량을 비롯해 전등사, 천재암, 진해사 등 강화지역에 있는 사찰과 암자의 솥 개수까지 기록하고 있다.
‘강화 군기수목’은 19세기 중반 병인양요 직전 강화부의 방어태세 전반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1783년 ‘강화부지’ 이후 이와 유사한 관련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본격적인 해안 방어론의 등장 직전 강화를 중심으로 한 조선의 군사적 수준과 외세에 대한 방어능력을 살펴보는데 매우 긴요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팔상록’의 본문은 언해본 ‘팔상록’의 권4에 해당하며 최성엽이라는 인물이 우봉 최씨 일가의 극락왕생과 안녕수복을 기원하며 ‘강화 군기수목’을 이면지로 활용해 같은 해 여름에 필사했다. ‘옥야부인견불수훈’ ‘신일독반견불생신’부터 ‘취녀승불위력개용’ ‘취아견불위능득도’까지 총 10개의 항목이 수록돼 있다. 그 뒤에는 ‘정구업진언’이 ‘팔상록’과는 전혀 다른 글씨체로 부기돼 있으며, 끝부분에 ‘서울 관동정 5의 73 불교시보사’라고 적혀 있어 후대에 ‘팔상록’ 내용 뒷부분에 이를 덧붙여 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팔상록’에는 규장각 문헌을 인수 보관했던 ‘경성제국대학’의 도서 인장이 찍혀 있다는 점에서 애초 규장각에 보관돼 있던 것이 외부로 유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군사문서에 부처님의 일대기가 실리게 됐을까. 김용태 불교학술원 HK교수는 “일단 왕실에서 외규장각 문서로 신앙행위를 했다거나 군사문서를 보호하기 위해 불교문헌으로 위장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며 “본격적인 연구가 있어야 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군사문서를 빼내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혼란한 상황이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자료의 발굴은 불교학술원이 문화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불교기록문화유산의 조사 정리 사업이 불교, 유교를 포함해 한국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아우르는 다방면의 문헌자료와 고문서를 새롭게 발굴, 소개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종수 불교학술원 HK연구교수는 “전국의 사찰, 도서관, 기관, 개인 소장의 각종 기록문화유산에 대한 방대한 조사와 수집은 각 분야의 기초토대연구와 학제적 융합연구에 크게 이바지할 뿐 아니라 한국의 역사전통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제고하고 글로벌한 문화콘텐츠 소스를 제공,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